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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밸런싱 덕분에 불확실성 속에서도 더 멀리, 더 빠르게 뛸 수 있는 단단한 기초체력을 회복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바람을 타고 글로벌 시장의 거친 파도를 거침 없이 헤쳐 나가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가 밝으며 구성원들에게 강조했던 말이다. 기초체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최 회장의 언급처럼 SK그룹은 2년여 전 사업 전반이 안갯속에 빠져있던 것과 비교하면 반도체를 앞세운 SK하이닉스의 질주와 함께 다양한 방식의 리밸런싱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인공지능(AI)을 한가운데 둔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여념이 없다.

[K-밸류업 리포트] 최태원 SK그룹 성공적 리밸런싱 이면의 고민, '자사주 소각' '재산분할' 따른 지배력 약화 가능성 여전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인공지능(AI) 시대 대비에 공을 들이는 가운데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

SK하이닉스는 해외 거점을 설립해 메모리 제조사를 넘어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고 실적 부진에 빠져있는 SKC도 유상증자라는 승부수를 통해 반도체 소재사업에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였다. SK이노베이션도 AI 시대에 대비한 에너지기업으로 전환에 기반을 마련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최 회장의 고민은 지배구조 측면에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지주사 SK의 자기주식(자사주) 보유 비중은 국내 주요 지주사 가운데 2번째일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3차 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자사주 소각은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최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그리 높지 않아 과거 ‘소버린 사태’와 같은 경영권 공격에 대응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 회장이 진행하고 있는 이혼소송의 재산분할 결과에 따라 자금 확보 수단으로 SK 지분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다면 최 회장의 지배력이 더욱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 미래를 바라본다, AI 중심 리밸런싱 박차

9일 SK그룹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경쟁력 강화를 넘어 AI 데이터센터 모든 분야에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AI 컴퍼니(임시 이름)’ 설립이 본격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AI 컴퍼니는 생태계에서 핵심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가 최근 공시한 연결감사보고서를 보면 자회사 SK하이닉스낸드프로덕트솔루션은 1일자로 판매 및 연구개발 사업관련 일체 자산 등과 자산 및 부채를 신설법인인 자신의 자회사 솔리다임에 양도했다.

또 SK하이닉스낸드프로덕트솔루션은 양도 규모에 상응하는 솔리다임 발행주식 16억5102만 여 주를 14조4280억 원에 취득했다. SK하이닉스->SK하이닉스낸드프로덕트솔루션(AI 컴퍼니)->솔리다임의 구조를 갖추기 위한 절차로 이후 법인명과 사명 변경, 경영진 선임 등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증권업계에서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170조 원까지 높여 잡은 SK하이닉스 이외에도 SK그룹 계열사들은 각각 AI에서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리밸런싱의 일환으로 지난 2년 동안 자산 매각, SK이노베이션과 SK온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을 수행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한 만큼 올해는 본격적으로 미래를 바라본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박 사업이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막힌 탓에 최근 3년 동안 영업손실을 본 SKC는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SKC는 6월8일 상장예정인 1조 원어치 신주를 발행하고 이 가운데 5896억 원을 글라스(유리)기판 자회사 앱솔릭스의 제품 개발을 위해 투입한다.

글라스기판은 표면이 매끄럽고 대형 사각형 패널로의 가공성이 우수하며 초미세 선폭 반도체 패키징 구현에 적합한 소재다. SKC는 글라스기판이 기존 실리콘기판을 대체해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만큼 AI 데이터센터용 하이엔드 제품과 상용 제품, 투트랙으로 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화(Electrification) 전략으로 미래 성장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중장기 청사진을 제시한 가운데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가고 있다. 직접 투자한 미국 SMR 기업 테라파워가 최근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미국 최초 건설승인을 받으면서다.

대형원전보다 건설기간과 비용의 불확실성은 줄이면서 부지 선택의 폭이 넓고 전력망 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증설할 수 있다는 점에서 SMR은 AI 시대 전력 수요의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밖에 사업재편 측면에서는 SK의 자회사인 SK실트론 매각이 리밸런싱의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SK는 SK실트론 보유지분 70.6%를 매각하기 위해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SK실트론의 나머지 지분 29.4%는 최 회장이 보유한 가운데 전체 기업가치는 4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 자사주 소각 의무와 재산분할까지, 지배구조 안정의 변곡점

떠들썩했던 3차 상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자사주 소각의 의무화’로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제도 실시 등 일정한 사유가 아니라면 회사는 새로 취득한 자사주는 1년 이내에,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는 1년6개월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과 관련해 재계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기업집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SK그룹이다.

지주사 SK는 총발행주식 7250만2703주 가운데 자기주식 1798만2486주, 24.8% 보유하고 있다. 이는 주요 지주사 가운데 롯데그룹의 롯데지주(27.5%)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수준이고 이날 종가(32만9천 원) 기준으로 모두 5조9162억 원에 이르는 규모다.

다만 SK그룹이 단순히 소각해야 할 지주사의 자사주 비중이 높기 때문에 상법 개정과 연관돼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최 회장(17.9%)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5.46%에 그치고 SK그룹은 2003년 외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보유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면 최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33.86%로 오히려 상승한다. 그러나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기존과 비교하면 최 회장의 우호지분은 50% 안팎에서 16%포인트가량 낮은 수준이다. 과거 소버린의 움직임 때도 국내 은행에 지분을 매각해 방어에 성공했던 점을 고려해보면 지배력이 더 약화하는 셈이다.

여기에 최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벌이고 있는 이혼소송에 따른 재산분할도 변수로 남아 있다.

앞으로 진행될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2심의 1조3808억 원에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심에서 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 등은 기여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에 노 관장 측의 재산분할 비율 35%도 더 낮게 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 회장의 SK 지분 17.9%가 특유재산인지 부부 공동재산인지에서 다툼의 여지가 남아 있는 만큼 여전히 최 회장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재산분할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유재산은 일반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부부 공동재산은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이날 종가 기준 최 회장의 SK 지분가치는 4조2689억 원으로 2심 종결일(2조761억 원)보다 크게 뛰었다. 재산분할 가액 산정일 기준 및 재산분할 대상 여부에 따라 지급해야 할 규모가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가치(7~8천억 원 안팎으로 추산)보다 크다면 애초에 크지 않은 지배력 속에서 지주사 지분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3차 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다음 날인 6일 “자사주 소각이 기업가치 제고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안정적 경영권 유지를 위한 대안에 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지 않으면 자사주 소각으로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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