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 직원이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시무식에 언제나 등장해서 위엄 있게 얘기하는 ‘회장님’도 사라졌다.
아닌데? 우리 회장님은 시무식에 나오셨는데? 자세히 들여다봐야한다. 그 회장님이 ‘진짜’ 회장님이 아닐 수도 있다.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도플갱어’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교묘하게 만들어진 AI 영상 이야기다.
보수적일 것 같던 금융권에 불어닥치고 있는 AI 열풍이 심상치 않다. 단순 챗봇 수준을 넘어 진짜 사람의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금융권이 통통 튀는 방법으로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근엄한 은행들이 말이다.
KB자산운용의 AI 아나운서가 ETF상품과 관련된 안내를 하고 있다. ⓒKB자산운용
KB자산운용은 6일 운용업계 최초로 생성형 AI 기반의 'AI 아나운서'를 데뷔시켰다. 펀드나 ETF 설명부터 시황 브리핑, 웹세미나, 이벤트 홍보 영상까지 대본만 쓱 밀어 넣으면 알아서 톤과 말투, 배경 연출까지 찰떡같이 맞춰서 영상이 뚝딱 나온다.
사실 KB금융그룹 직원들에게는 이게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도 그럴것이, KB금융그룹 직원들은 이미 ‘가짜 회장님’까지 본 적이 있다.
2026년 KB금융그룹 시무식 영상에서 “KB는 가장 올바르게 기업을 경영하고 우리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을 고객과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고 근엄한 메시지를 전하던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님, 그 회장님은 사실 진짜가 아니라 AI 기술로 구현해 낸 '디지털 아바타'였다. KB금융그룹 관계자가 살짝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목소리는 혹시라도 잘못 나가면 안 되니까 직접 회장님이 녹음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 오프라인 은행 점포들이 통폐합으로 팍팍 줄어들고 있는데, 그 빈자리를 'AI 브랜치'라는 신개념 무인 점포가 채우고 있다.
신한은행의 AI 브랜치에 가면 주요 은행 업무의 대부분을 AI 창구가 직접 처리한다. 화면 속 AI 뱅커랑 대화하는 건 기본이고, 정맥 인증에 신분증 스캐너까지 전부 구비돼 있어서 계좌 입출금부터 증명서 발급까지, 무려 60여 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신분증 미지참 등 직원 추가 상담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업무완결도는 80%에 이른단다.
NH농협은행도 질 수는 없다. 전국 1100개가 넘는 영업점에 AI 뱅커를 쫙 깔았다. 복잡한 투자 상품 설명과 안내를 AI가 척척 보조해주니까 점포 운영비는 확 줄어들고, 고객은 더 빠르고 편하게 안내받는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좀 더 기술적이고, 진지한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시중 은행 이야기도 아니다. 무려 한국은행 이야기다.
한국은행은 네이버와 손잡고 전 세계 중앙은행 최초로 전용 AI 플랫폼 'BOKI(Bank Of Korea Intelligence)'를 론칭했다.
국가 경제 데이터라는 초특급 기밀을 다루는 만큼, AI를 외부 네트워크와 완벽하게 단절된 내부망(온프레미스)에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데이터 유출 걱정은 전혀 없이 철통 보안 폐쇄망 안에서 AI 학습과 추론이 완결되도록 설계된 '소버린 AI'를 완성한 것이다. 가장 보수적 국가 핵심 기관의 가장 진보적 혁신인 셈이다.
금융권은 돈을 다루는 곳, 돈을 다루려면 역시 트렌드에도 민감해야 한다. 금융권의 트렌디 한 AI 진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