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정부 이기는 시장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요즘 식품업계를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더 든다. 정부를 이기는 기업도 없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밀가루가 진열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CJ제일제당의 행보는 단순하게 볼 게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수익성이 크게 둔화됐다. CJ대한통운을 제외한 매출은 17조7549억 원으로 전년보다 0.6% 줄었고 영업이익은 8612억 원으로 같은 기간 15.2% 감소했다. 식품과 바이오 사업 모두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 감소를 기록했다.
그런데 대표상품 가격을 크게 내렸다. 배당은 유지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들어 설탕 가격을 평균 6% 인하했고 밀가루 가격도 두 차례에 걸쳐 낮췄다. 원재료 가격 인하에 맞춰 일부 제빵 제품 가격도 내렸다. 배당 역시 연간 주당 6천 원으로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
살림이 어려운데, 상품 가격을 낮추고 동시에 배당까지 유지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특히 CJ제일제당은 4년간 이어진 성장 정체 끝에 지난해 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섰고 윤석환 CJ제일제당 대표이사가 직접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위기”라고 표현할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다. 위기 상황에서 가격 인하와 배당 유지를 동시에 '선택한' 이유를 정부의 압박에서 찾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말 국무회의에서 “소수 유통회사가 국내 유통망을 독과점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후, 공정위 조사가 이어졌다. 제당·제분 기업 7곳에는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됐고 한국제분협회 이사들은 사죄하며 이사회를 일괄 사임했다. 정부의 규제 앞에 업계가 고개를 숙였다.
배당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이 식품업계의 이른바 ‘짠물 배당’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배당 확대를 유도하자 기업들은 쉽사리 배당을 줄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금융권과 일부 기업들은 실적 둔화에도 배당을 유지하거나 늘리며 실적 흐름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정부를 못 이기는 게 증명이 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아래에서는 기업 역시 정부를 못 이기는 게 확연히 보인다. 다만 장기적으로 기업들을 압박해서 무리한 배당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나아가 산업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퇴로 없는 전방위적 압박이 주어지면 기업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가격은 낮추고 배당은 유지해야 한다면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으로 좁혀진다. 실제로 CJ제일제당은 비용을 어떻게든 줄여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그리고 있다. 이런 환경이 장기화될 경우 기업의 투자와 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장도 기업도 정부를 이기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가 굳이 시장과 기업을 이겨야 하는지 궁금하다. 결국 시장과 기업의 승리가 정부의 승리인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