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 단종의 삶을 다룬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영화의 주요 배경지인 영월군이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왼쪽), 영월 청룡포에 들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쇼박스, 연합뉴스
지난 3일 영월군에 따르면 영화 개봉 이후인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삼일절 연휴 기간 청령포와 장릉 방문객은 각각 1만4905명과 1만1494명으로, 총 2만6399명에 달했다. 설 연휴(2월 14~18일) 방문객 1만7916명을 합산하면 두 차례 연휴 동안 4만4315명이 다녀간 셈이다. 이는 지난해 청령포와 장릉을 찾은 연간 방문객 26만3,327명의 34%에 해당하는 수치다.
영월군은 청령포가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소개되며 관심이 집중된 점을 관광객 증가의 배경으로 꼽았다. 이처럼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나 영화는 제작사와 배급사의 수익을 넘어 촬영지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고, 이는 관광객 유입과 지역 상권 활성화로 이어져 지역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를 낳는다.
드라마 ‘주몽’으로 황금기 누렸던 ‘나주영상테마파크’
나주영상테마파크 전경. ⓒ나주시
2007년 종영한 인기 대하드라마 주몽 역시 대표적인 사례다. 주요 촬영지였던 나주영상테마파크(당시 삼한지테마파크)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관광객이 급증했고, 주민 소득 증대와 지역 홍보 효과 등을 포함해 총 730억 원에 달하는 직·간접 경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나주시에 따르면 2006년 7월 드라마 촬영이 시작된 이후 해당 테마파크를 찾은 관광객은 65만 명에 이르렀고, 이를 통한 지역 주민 소득 창출 효과만 21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흥행의 열기가 식자 상황은 달라졌다. 사후 관리와 콘텐츠 확충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방문객이 급감했고, 운영 적자가 이어졌다. 매년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이 반복되자 나주시는 결국 테마파크를 철거하고 의병 정신을 기리는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을 새로 조성했다. 박물관은 오는 5일 개관할 예정이다.
반짝 인기 따위는 없는 ‘순천드라마세트장’
순천드라마세트장에서 드라마 '말모이'를 촬영하고 있다. ⓒ순천시
반면,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한 사례도 있다. 2006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 세트장으로 조성된 순천드라마세트장은 이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브이아이피' 등 약 80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활용되며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왔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2018년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가 발표한 ‘지역 영상관광 실태조사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최근 10년간 순천드라마세트장이 지역 경제에 미친 기여 효과는 186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연간 입장객 수에 방문객의 지역 내 지출액을 곱해 산출한 수치다. 실제로 이곳은 해마다 적게는 7만 명에서 많게는 64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순천드라마세트장이 꾸준히 사랑받는 배경에는 단순한 ‘촬영지’라는 상징성을 넘어선 전략이 있다. 지속적인 콘텐츠 개발과 체험 프로그램 운영, 포토존 조성 등을 통해 가족 단위 방문객과 MZ세대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지난해인 2025년 추석 연휴에는 반려견 동반 프로그램 ‘추억의 한가위, 드라마 속으로 with 댕댕나들이’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순천시에 따르면 해당 연휴 기간 세트장을 찾은 방문객은 3만3천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희비가 엇갈린 ‘폭싹 속았수다’의 배경, 제주와 충남 당진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넷플릭스
지속적인 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의 중요성은 또 다른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폭싹 속았수다의 주요 배경이 된 제주도와 당진시의 사례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이후 2025년 1~3월 제주국제공항 여객 수송 실적은 613만 명으로 전년 대비 88.0% 수준이었으나, 방영 이후인 4월에는 244만 명으로 전년 대비 95.7%까지 회복했다. 현충일 연휴였던 지난 6일에는 하루 9만3천 명을 수송하며 2019년 이후 일일 최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드라마 효과가 실제 관광 수요 회복으로 이어진 셈이다.
반면 당진은 극 중 주요 장면인 금은동이네 가게와 주인공 관식이가 배를 파는 장면이촬영되며 관심을 받았음에도, 현장에 촬영지 안내 표지나 지도 표기, 포토존, 해설판 등 기본적인 관광 인프라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방문객의 체류와 소비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당진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사업’을 통해 숙박비와 식비, 세트 제작비, 보조 출연료 등 촬영 관련 비용을 적극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후 활용 전략의 부재는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결국 영상 콘텐츠의 흥행은 출발점일 뿐이다. 촬영지를 일회성 관광지로 소비할 것인지, 지속 가능한 지역 자산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는 지자체의 기획력과 사후 관리 역량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