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4년 만에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 사이 전쟁이 발발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러-우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번 미국의 이란 공격에서도 ‘에너지’는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뉴욕포스트 등 해외언론에 따르면 미국의 이란 공습은 원유 공급을 차단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최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것과도 연결된다. 중국이 수입한 원유 가운데 3분의 1이 이란이나 베네수엘라산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이처럼 에너지 패권 경쟁도 전쟁의 한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국제유가는 이틀 만에 10% 이상 뛰었고 LNG 가격은 하루에 40%씩 뛰고 있다.
1차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가 가장 약한 고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원유, 가스 수급 상황에 산업 활동이 큰 영향을 받는 것인데 에너지 가격 폭등은 우리 경제 전반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다행히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에 단기 대응 능력은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는 수개월 분의 비축유와 비축의무량을 상회하는 수준의 가스 재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지정학적 위기가 ‘상수’처럼 자리 잡고 대응력을 키워가는 시대에 이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은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흔들리는 ‘변수’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중립적이고 냉정해야 할 에너지 정책이 마치 정권의 이념을 대변하고, 정치적 공격의 대상처럼 여겨져 왔다는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중 사이 ‘확대’와 ‘감축’, 그리고 그 실패를 마치 정권의 전유물처럼 취급하는 사이 에너지 안보를 지켜줄 구조적 완충 장치는 제자리걸음에 머물렀다. 글로벌 시장의 변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 산업적, 공학적 분석은 뒤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말미 원전 비중은 30%를 기록했다. 이어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깃발 아래 한 자릿수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뒤이은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윤석열 정부는 ‘RE100(재생에너지로 모든 전력을 충당하는 캠페인)’의 의미가 어려웠던 탓인지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번 정부가 출범할 즈음으로 돌아가면 다시 원전업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보냈고 신재생에너지업계는 희망이 가득 찬 눈치였다.
이 과정에서 원전은 얼마나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지, 대신 위험성은 어떻게 막을지, 신재생에너지의 친환경성은 왜 중요하고, 간헐성은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이런 논의가 생산적으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을 포함해 무탄소에너지를 달성하는 ‘CF100’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뒤 관련 정책 세미나들에서는 비슷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여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정부가 밀었던 CF100는 정답으로 추대됐고 신재생에너지는 오답으로 치부됐다. 야당의 세미나는 RE100을 유토피아로 바라봤고 원전은 디스토피아로 그렸다.
원래 이런 성격의 세미나가 균형을 보이는 일이 잘 없지만 에너지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 정치적 색채가 지나치게 강했다. 그런 탓인지, 항상 세미나는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 반대 의견을 지닌 한 이해관계자가 질문 아닌 질문으로 세미나 내용을 극렬히 비판하고, 좌장이 황급히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공통된 풍경이었다.
그사이 발생한 비용은 고스란히 산업계의 몫이다.
지금이야 원전업계가 기지개를 펴지만 여전히 무너져 있는 밸류체인은 수년 전 탈원전 탓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먼 길을 돌아 최근 신규원전 2기 건설이 추진되지만 2030년대 후반으로 준공 목표가 잡혀 있다.
우리나라 안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어려웠고 안 그래도 크지 않은 태양광 시장은 저가 중국제품이 장악해버렸다. 복잡한 인허가가 첩첩산중인 해상풍력은 국민성장펀드로 동력은 찾았지만 실제 날개를 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국내 산업계는 대형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AI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앞에 서 있다.
이 현장들이 원하는대로 가동하려면 더 많은 전기가 안정적으로 보급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또 그 전기는 지금보다 더 깨끗해야 한다. 10년은 걸리는 전력망 구축도 풀어야할 숙제다.
문제는 이런 지정학적 위기가 ‘상수’처럼 자리 잡고 대응력을 키워가는 시대에 이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은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흔들리는 ‘변수’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