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천 대 중후반에 머물며 숨 고르기를 하던 코스피 지수가 불과 8개월 만에 6천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았다. 시장 전체에 융단폭격처럼 쏟아진 거대한 유동성이 만들어낸, 한국 증시 역사에 굵직하게 기록될 경이로운 사건이다.
그러나 화려한 축포가 터지고 있는 광장의 한 구석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유례없는 대세 상승장 속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개미들의 탄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의 시장은 반도체, 로봇, 건설, 증권 등 몇몇 선택받은 테마가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개별주 장세’이자 극단적 ‘압축 장세’이기 때문이다.
시중의 거대한 자금은 더 큰 수익을 좇아 무서운 속도로 테마를 넘나들며 순환매를 이어가고 있고, 이 거친 파도에 올라타지 못한 이들은 지독한 ‘포모(FOMO)’에 시달리며 철저한 소외감을 맛보고 있다.
지수는 6000을 가리키는데 내 계좌만 푸른빛인 이유는 시장의 상승이 가짜여서가 아니다. 상승의 속도와 쏠림이 빚어낸 착시 현상이다. 지수가 아득한 고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남들의 화려한 수익률에 눈이 멀어 이미 불을 뿜고 있는 개별주에 뒤늦게 뛰어드는 것은 스스로 섶을 지고 불투성이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맹렬한 순환매 장세는 오를 때 달콤하지만, 자금이 빠져나갈 때의 폭락은 찰나의 벼락처럼 잔인하다. 자금이 물밀 듯이 들어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 황금같은 타이밍을 개미가 완벽하게 포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요동치는 시장 속에서 멘탈을 부여잡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학 교과서 밖의 ‘투자 낙수효과’를 굳게 믿어야 한다. 실물 경제에서 낙수효과의 실재를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것과 달리, 자본시장에서는 낙수효과가 분명히 실재한다. 거대한 댐에 물이 끝까지 차올랐다면, 그 물은 결국 댐을 넘어 마른 땅, 즉 저평가된 우량주와 튼튼한 기업들로 스며들기 마련이다.
물론 닷컴버블, 코인, 메타버스 열풍처럼 낙수효과가 미처 닿기도 전에 신기루처럼 꺼져버린 버블의 역사도 숱하게 많다. 그러나 이번 코스피 6천 시대는 결이 다르다. 시장을 밀어 올리는 엔진이 하나가 아닌 ‘두 개’이기 때문이다. 엔진 하나의 출력이 약해지면 단기 조정이 올 수는 있지만, 두 개의 엔진이 동시에 꺼져버리기 전에는 방향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첫 번째 엔진은 굳건한 실체, 즉 ‘실적 모멘텀’이다. AI와 HBM 수요 폭발, 로봇 등 미래 기술에 대한 확고한 기대감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라는 우리 경제의 ‘기함’들의 실제 성적표와 맞물려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엔진이다. 이재명 정부가 칼을 빼든 ‘지배구조 선진화’가 마침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심장부를 도려내고 있다. 상법 개정안을 필두로 자사주 소각 강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선임의 3%룰 강화 등 오너 일가의 편법 승계,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이 쏟아지면서 만년 ‘박스피’의 굴레에 갇혀 있던 국내 증시가 살아나고 있다. 만년 저평가의 굴레에 갇혀 있던 금융지주와 증권주들, 지주회사들이 환골탈태하며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그 명백한 증거다.
반도체나 미래 기술의 화려함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소위 ‘가치주’들의 묵직한 급등세는, 이 두 번째 엔진이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구조적 변화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개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꽃놀이가 한창인 남의 잔치를 부러워하는 조급함이 아니다. 나의 선구안을 믿고 침착하게 기다리는 뚝심이다.
내가 고른 종목이 한낱 값싼 소외주가 아니라, 탄탄한 실적을 갖췄음에도 아직 테마의 광풍을 타지 않은 ‘알짜 기업’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당장 배트를 헛되이 휘두를 필요가 없다.
뛰어난 선구안을 가진 타자는 궤적을 벗어난 유인구에 결코 방망이를 내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타석을 지키다 보면, 시장이라는 투수는 결국 정직한 한가운데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수익은 바로 그 순간, 흔들림 없이 온 힘을 실어 풀스윙을 날릴 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