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6연임에 성공했지만,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장기간 이어진 주가 부진과 낮은 배당, 미흡한 주주 소통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며 일부 소액주주들은 전자투표를 통해 연임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
특히 이번 움직임은 행동주의 펀드가 주도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소액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모아 실제 의결권 행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규모 자체는 제한적이지만, 별도의 외부 세력 없이 형성된 반대 흐름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표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반발의 배경에는 호텔신라의 핵심 사업인 면세부문의 구조적 부진이 자리한다. 호텔신라는 외형상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면세 사업의 수익성 회복이 지연되면서 실질적 체력은 여전히 취약하다. 업황 부진이라는 외부 변수뿐 아니라 구조적 경쟁력 회복 없이는 정상화를 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무적 대응 역시 이러한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달 19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관련 안건은 가결됐지만 일부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이 반대표 5%의 의미를 단순히 숫자가 보여주는 가치보다 의미 있게 평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호텔신라가 6일 공시한 1300억 원 규모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이 이날 진행됐다. 유동성 확보 차원의 조치로 해석되지만, 수요 예측 결과는 시장이 바라보는 호텔신라의 신용도와 성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호텔신라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산재평가라는 카드도 꺼내 들었다. 지난해 서울 장충동과 제주 신라호텔 부지 등을 재평가하면서 토지 장부가액은 1917억 원에서 1조1289억 원으로 6배 가까이 급증했고, 부채비율도 394%에서 197%로 절반 가량 낮아졌다.
다만 자산재평가는 현금 유입 없이 장부상 자본만 늘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부채비율을 낮추는 효과는 있지만 실제 차입금 상환 능력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시 효과’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용평가 업계 역시 보수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호텔신라의 신용등급은 여전히 부정적(AA-)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인천공항 DF1 권역 조기 철수로 발생한 약 2300억 원 규모의 사용권자산 해지 손실이 반영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고, 재무 부담도 여전한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주원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전반적 영업이익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 DF1권역 면세사업을 조기 철수하면서 사용권자산 해지 손실로 지난해 당기순손실 1728억 원을 기록했다"며 "부채비율은 220.1%, 차입금의존도는 47.5%로 재무부담은 여전히 과중한 수준"이라고 바라봤다.
면세사업의 실적 역시 수익성 회복의 한계를 드러낸다. 2024년 면세사업 매출은 3조2819억 원으로 2023년보다 11.9%가량 증가했지만 영업손실 697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1년 뒤인 2025년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대규모 일회성 비용 영향으로 실질적 수익성 회복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호텔신라는 최근 3년간 실적 대부분에서 시장 기대치를 반복적으로 하회하면서 '어닝쇼크'가 사실상 상시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텔신라는 2023년 매출 3조5685억 원, 영업이익 912억 원을 내면서 시장 예상치보다 각각 3.2%, 26.9% 하회했다. 2024년에는 매출 3조9476억 원을 내면서 시장 예상치를 1.63% 밑돈 데다, 영업손실 52억 원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135억 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이 역시 시장 예상치보다 50.9% 낮은 수준에 그쳤다.
결국 시장 기대와 비교해 수익성 측면에서 20~50% 수준의 괴리가 반복되면서, 호텔신라는 단순 업황 부진을 넘어 실적의 예측 가능성 자체가 낮아진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실적 신뢰가 흔들리면서 투자자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온라인 종목토론 게시판 등을 중심으로 이부진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 의견을 제기했고, 실제 의결권 행사로 이어졌다. 전자투표 반대표는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집계 기준으로만 1만 표를 넘어섰고, 주주총회 결과 반대 주식수 비율도 5%에 달했다.
주주총회 현장에서도 비판은 이어졌다. 한 소액주주는 “지난 3년간 12개 분기 중 8개 분기에서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며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일회성 비용이 반복된다면 더 이상 일회성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세계 최대 기업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조차도 직접 나와 분기마다 실적 전망치를 제시하고 설명한다”며 “공정 공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소액 주주를 대상으로 실질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IR(기업 설명 활동)을 정기적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실적 불만을 넘어 경영진의 책임성과 소통 방식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대된 것이다. 과거에는 실적 부진에도 주주들이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경영진의 설명 책임과 정보 공개 수준까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실제 주주 행동의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액트에는 16만여 명의 개인투자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관련 지분 규모도 2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상목 액트 대표는 “과거에는 KCGI가 참여한 한진칼 사례처럼 행동주의 펀드가 주도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며 “이번처럼 별도의 펀드 개입 없이 소액주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의결권 행사로 이어진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례는 단순히 반대표 규모 자체보다, 그 형성과정에서 드러난 ‘자발성’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이러한 자발적 움직임이 단순한 투자 판단이 아니라, 반복된 실적 부진과 이에 대한 설명 부족, 소통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상목 액트 대표는 “메리츠금융그룹의 김용범 부회장과 최희문 대표는 대규모 스톡옵션을 받았음에도 주주총회에서 ‘성과급 잔치’라는 비판보다 ‘오래 경영해달라’는 질문을 받았다”며 “결국 주주들이 원하는 것은 오너 여부가 아니라 탁월한 성과와 책임경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