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소녀의 마지막 구조 요청은 끝내 도착하지 못한 구급차와 함께 비극으로 끝났다. 이는 전쟁 상황에서 구조 인력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는 이른바 ‘더블탭(Double Tap)’ 전술의 잔혹성을 드러냈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스틸 컷 ⓒ찬란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2024년 1월 가자지구 텔 알하와에서 발생한 6세 소녀 힌드 라잡의 실화를 다룬다. 당시 힌드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차량 안에서 가족 6명의 시신에 둘러싸인 채 홀로 살아남았다. 공포에 질린 힌드는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구조대에 전화를 걸어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다.
적신월사 상담원들이 3시간 넘게 통화를 이어가며 힌드를 달래는 사이, 이스라엘군과 사전 조율을 마친 구급차가 마침내 현장에 도착했다. 구급차가 보이느냐는 상담원의 물음에 힌드는 "구급차가 보여요"라고 답하며 안도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 찰나, 힌드의 짧은 비명과 함께 격렬한 총성이 울려 퍼졌고 간절했던 구조의 교신은 그대로 끊기고 말았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 스틸 컷. ⓒ찬란
힌드 라잡의 구조 요청이 있은 지 12일이 지난 2024년 2월 10일, 이스라엘군이 해당 구역에서 철수하면서 참혹한 현장의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힌드가 타고 있던 차량에서는 335발의 총탄 자국이 확인됐으며, 약 50m 떨어진 곳에 폭격으로 전소된 구급차 안에는 구조대원 유세프 제이노(Yousef Zeino)와 아흐메드 알 마드훈(Ahmed al-Madhoun)이 숨진 채 발견됐다.
1차 공습 이후 부상자를 돕기 위해 구조대나 민간인이 현장에 모인 시점을 노려 다시 공격을 가하는 전술은 군사용어로 '더블탭(Double tap)'이라 불린다. 이는 출동한 의료진과 소방관, 민간 구조대를 겨냥하는 전쟁 범죄 행위이다. 이런 공격은 구조 인력에게 극심한 공포를 유발해 현장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1차 공격에서 살아남은 부상자들마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국제법상 의료 시설과 민간 구조대원에 대한 공격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분쟁 지역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전술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일 "헤즈볼라가 구급차를 군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조 차량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국제앰네스티와 세계보건기구는 의료 시설과 구호 인력에 대한 공격이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흘람 바다위(왼쪽, 51세)가 13일(현지시각) 레바논 슈웨이파트에서 열린 아들의 장례식에서 울부짓고 있다. 그의 아들 하산 알리 바다위(31)는 레바논 적십자 소속 구급대원으로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졌다. ⓒAP/연합뉴스
구조의 손길마저 끊어버리는 더블탭 공포는 가자를 넘어 레바논과 이란으로 확산되며 더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고 있다. 로이터와 AP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현지시각) 레바논 남부 베이트 야훈에서는 유엔 평화유지군(UNIFIL)을 통해 사전에 통행 승인을 받고, 멀리서도 식별 가능하도록 적십자 표식과 조명을 밝힌 채 부상자를 이송하던 구급차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일요일 공습으로 숨진 적십자 구급대원 하산 바다위의 동료들이 2026년 4월13일 레바논 베샤문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서 부둥켜 안은 채 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사고로 베테랑 구조대원 하산 바다위(31)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동료 대원이 중상을 입었다. 이는 힌드 라잡 사건과 마찬가지로 정식 구조 절차를 밟은 구조대원도 군인의 표적이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란에서도 이러한 비극은 반복됐다. 지난 2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 북서쪽 카라지 B1 다리에서 미군이 감행한 공습은 더블탭 전술의 잔혹함을 여실히 드러났다. 알자지라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전통 명절인 시즈다 베다르를 맞아 가족들과 소풍을 즐기던 시민들 위로 1차 폭격이 가해졌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부상자를 구하기 위해 민간인과 구조대가 달려들자 곧바로 2차 공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구조대원 2명을 포함해 최소 8명이 숨지고 95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란 테헤란 북서쪽 카라지에서 공습으로 파괴된 B1 다리의 모습이 지난 3일(현지시각) 촬영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인 4월2일 "이란에서 가장 높은 다리 중 하나가 파괴됐다"고 밝혔고, 앞서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AFP/연합뉴스
이란 공습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다리 파괴 영상을 직접 공유하며 군사적 성과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참혹한 더블탭의 현실이 있었다.
6살 소녀 힌드 라잡의 목소리에서 시작된 이 비극적인 기록들은 현대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게 민간인과 구조자의 생명을 짓밟고 있는지, 전쟁 중에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4일(현지시각) 예루살렘에 위치한 세계 홀로코스트 기억 센터인 야드 바솀(Yad Vashem)에서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을 맞아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13일(현지시각) 정부 회의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어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만나 한 가지 엄청난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거 홀로코스트 당시 우리는 시인 즈비 그린버그가 말했듯 '사냥 당하는 동물'과 같았다. 속수무책으로 도살당했고 극소수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반전되었다. 이제 우리가 우리를 압제하는 자들을 사냥하고 있다. 우리를 파괴하려던 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처지가 되었다. 홀로코스트 80년 만에 이스라엘의 국력은 정점에 도달했다"
유대력을 기준으로 13일 일몰부터 다음 날 일몰까지는 이스라엘의 공식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욤 하쇼아(Yom HaShoah)'다. 이스라엘은 이 기간에 나치에 의해 희생된 600만 유대인들을 기억하며 국가적 추모에 들어간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 추모의 기간에 과거 유대인이 "사냥당하는 동물"이었다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압제자들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군사 행동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스스로 사냥꾼이 되는 것이라면, 그 화살에 맞은 무고한 생명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피해자의 역사가 현재의 비극을 정당화하는 방패로 쓰이고 있다는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