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인척과 친구들이 미국 외교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글로벌 정세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21세기 최첨단이지만, 정치는 19세기 수준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친구 스티브 윗코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 사진은 이해를 돕기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영국 가디언은 최근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문제를 두고 40년지기 친구인 스티브 윗코프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의견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윗코프는 부동산 전문 변호사 출신으로 외교경험이 전무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협상에서 전면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쿠슈너도 뉴욕 유대계 부동산 재벌가 출신으로 트럼프 집권 1기 때 백악관 수석고문을 활동했을 뿐, 전통적 외교·안보라인의 이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정치를 전문적으로 다뤄오지 않은 인물들이 트럼프 대통령 뒤에서 이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단순히 두 나라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와 깊이 맞물려 있어 전 세계에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집권 뒤 글로벌 외교경험이 없는 친구와 친인척을 노골적으로 등용하면서 권력을 사유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쿠슈너의 아버지인 사돈 부동산 개발업자 찰스 쿠슈너를 주프랑스 미국대사로 지명했고,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약혼자였던 킴벌리 길포일을 주그리스 미국대사로 지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권력자가 가족이나 친척에게 관직이나 지위를 주는 족벌주의 정치를 두고 '네포티즘(Nepotism)'이라고 부른다. 15~16세기 중세 교황들이 자신의 사생아를 조카로 위장해 특혜를 준 관행에서 유래됐다. 조카(nephew)를 뜻하는 라틴어 네포스(nepos)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미국 대통령들은 건국 이후 약 180년 간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곁에 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가족을 공공연하게 공직에 임명해왔다.
존 애덤스 대통령은 아들 존 퀸시 애덤스를 프로이센 주재 미국 공사로, 문제 많은 사위 윌리엄 스티븐스 스미스를 여러 요직에 임명해 비판을 받았다.
이런 흐름은 20세기로 이어져 프랭클린 D. 루즈밸트 대통령은 아들 제임스 루즈벨트를 행정보좌관 겸 대통령 비서로 임명해 18개 연방기관을 총괄하게 했다.
존 F. 케니디 대통령도 1961년 35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하면서 법적 경험이 부족한 인물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 여론도 차갑게 돌아섰다.
결국 1967년 미국은 이른바 네포티즘 금지법(연방법 3110조)이 시행됐다. 하지만 이 법도 여러 맹점이 많았고, 21세기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친인척을 요직에 앉힐 수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신의 자식을, 사위를, 사돈을 정부 요직에 앉힌다면 여론은 어떨까. 좌우를 불문하고 언론은 '국정농단'이라 비판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는 '비선 실세'로 정권 인사에 개입했다고 경을 쳤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은 이권에 개입했다가 잇달아 검찰 수사를 받아 감옥에 갔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한민국 정치의 양대 산맥도 친인척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다.
미국은 현재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에서 최첨단을 걷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치는 최고 권력자의 '총애'로 고위 공직자로 임명된다. 남의 나라 사정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 비전문가 외교라인이 글로벌 국제정치를 쥐고 흔든다는 점이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데 우리가 엉뚱하게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그저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