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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공유한 메시지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가 반도체 호황을 타고 역대급 실적을 거두면서 삼성전자를 향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안주하지 말고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 회복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그러나 이 회장의 신중한 모습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는 꽤나 확실한 온기가 돌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150조 원이 넘는 전무후무한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고 삼성전자도 자체적으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의 양산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1974년 안팎의 반대를 뚫고 자금난에 시달리던 회사를 인수한 이건희 선대회장의 결단에서부터 비롯됐다.

이 선대회장이 승부수와 ‘신경영’으로 도약해온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앞세워 이 회장이 ‘뉴삼성’을 본격 궤도에 올릴 수 있을지 시선이 몰린다.

삼성전자는 2025년 연결기준 매출 333조6059억 원, 영업이익 43조6011억 원, 순이익 45조2068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29일 밝혔다. 2024년보다 매출은 10.9%, 영업이익은 33.2%, 순이익은 31.2% 늘어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실적 개선은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이 이끌었다.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 매출은 130조1천억 원, 영업이익은 24조9천억 원으로 1년 전보다 각각 17.0%, 64.9%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호황과 함께 올해 영업이익이 150조 원 이상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이재용 회장이 오랫동안 발목을 잡던 사법리스크를 온전히 해소하고 맞이하는 첫해인 만큼 DS부문 실적 호조의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한국반도체 인수부터 '삼성 신경영'까지, 반도체 향한 이건희 선대회장의 통찰력

삼성전자 반도체 성장에는 ‘삼성’을 한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이건희 선대회장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선대회장은 1974년 아버지인 이병철 창업회장조차 반도체 사업 진출을 망설일 때 당시 파산 직전이었던 한국반도체 인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TV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무슨 반도체냐’는 강한 내부 비판에도 반도체가 국내 산업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보고 사재까지 털어넣었던 50여 년 전 이 선대회장의 ‘혜안’이 결국 지금의 삼성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이 창업회장이 1983년 2월8일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는 ‘도쿄 선언’ 이후 불과 6개월 만인 1983년 12월1일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미국, 일본과 비교해 10년 이상 뒤처졌던 반도체 기술 격차를 4년으로 줄였다.

이를 두고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며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될 만한 것을 배우러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이 선대회장은 기흥 지역을 공장부지로 최종 확정하고 일반적으로 2~3년 소요되는 공사를 착공 6개월만에 완공하는 등 국내 반도체 산업의 중심 ‘기흥밸리’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64K D램의 호황이 끝나기 전에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는 이 선대회장의 의지가 강력했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초 불황기에도 오히려 투자를 늘리며 1992년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처음으로 넘어서며 글로벌 선두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이어 1994년 256M D램, 1996년 1Gb D램을 세계 최초로 잇따라 개발하면서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다.

이 선대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언한 ‘신경영’은 삼성의 근본을 다시 세우고 지금까지 반도체 사업의 기술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밑바탕으로 여겨진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제품의 ‘질’을 강조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며 혁신을 주문한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이 선대회장의 반도체 리더십은 위기 때마다 주저하지 않은 신속한 결단, 품질을 최우선에 둔 기술 중심 기조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진격하는 반도체, 힘실리는 이재용의 '뉴삼성'

이재용 회장도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과 관련한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사법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2016년 사법농단 사태 이후 9년 만이다.

그간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전반에서 각 산업군에서 투자에 신중할 때마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에 묶여있다는 점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 왔다. 많게는 수백조 원의 투자결정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과감한 투자 시계가 빠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족쇄가 풀린 셈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엔비디아·AMD의 HBM4 최종 품질검증을 가장 먼저 완료하고 조만간 본격 공급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 회장은 든든한 실적 기반 위에 기술력을 앞세워 HBM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쥘 태세도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시설투자로 52조7천억 원을 집행한 가운데 DS부문에만 47조5천억 원을 투입했다. 연구개발비용으로는 역대 최대인 37조7천억 원을 쏟아부었다.

삼성전자는 이날 진행한 지난해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HBM 분야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되찾고 AI 중심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특히 HBM4가 양산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삼성전자는 “HBM 개발 초기부터 고객 요구를 웃도는 성능을 목표로 설계했고 성능 상향 과정에도 재설계 없이 대응에 성공했다”며 “현재 주요 고객사의 품질검증(퀄테스트) 완료 단계로 돌입했고 차별화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언급한 주요 고객사를 엔비디아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HBM 매출이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차세대 ‘HBM4E’ 개발도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시장과 소통했다. 또 AI 산업과 연관된 반도체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올해 시설투자를 지난해보다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올해는 글로벌 관세와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 여러 리스크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DS부문은 로직, 메모리,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모두 갖춘 ‘원스톱 솔루션’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회사로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AI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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