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외국인 CEO는 ‘1조7천억 원’에 담긴 진심을 알아달라 강변했고,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쿠팡의 가식과 꼼수를 시종일관 맹비난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사태 연석 청문회’ 풍경이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대표가 30일 국회 '쿠팡 사태 연석 청문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국회방송TV 유투브 라이브 영상 갈무리
“1조7천억 원에 달하는 보상은 전례가 없는 규모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대표는 이날 청문회에서, 더 적극적 보상안을 내놓을 계획이 있냐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 수습 과정에서 쿠팡의 선택과 발언을 종합하면, ‘국민에 대한 책임’보다는 과징금·규제·소송 비용을 관리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주도로 열린 이날 청문회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등을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과방위를 비롯해 국토교통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등 6개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참여했다.
특히 청문회를 하루 앞둔 29일, 쿠팡이 발표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 보상안을 두고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쿠팡은 내년 1월15일부터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3천370만여 명에게 5만 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쿠팡과 쿠팡이츠에서 각각 5천 원, 알럭스와 쿠팡트래블에서 각각 2만 원씩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다. 규모는 모두 1조6850억 원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낮은 보상 수준은 둘째치고 판촉 행위에 불과한 이런 꼼수에 국민 공분을 야기하고 있다”며 “경영진이 국회에 출석해 책임 있는 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밝혀야 하는데 국회 밖, 대한민국 밖에서 소나기 피하기식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쿠팡과 쿠팡이츠는 각각 5천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알럭스와 쿠팡트래블 같은 생소한 서비스에 2만 원씩 배정돼 있다”며 “양말 한 짝도 못사는 보상책을 내놓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불출석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쿠팡의 ‘자체 조사’도 도마에 올랐다. 로저스 대표는 국정원과의 소통 여부를 두고 “(중국 국적의 전 직원을) 자체적으로 조사한 것이 아니고 정부 지시에 따라 한 달 이상 협조했다”며 “(국정원은) 저희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고, 한국 법에 따라서 협조 요청은 구속력이 있어 기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이해했다”며 고 말했다.
앞선 25일 쿠팡은 고객 정보를 유출한 중국 국적의 전 직원을 특정했고, 중국 현지에서 잠수부를 투입해 이 직원의 노트북을 하천에서 건져 올렸다고 밝혔다.
정부는 쿠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쿠팡 사태 범정부 TF’ 팀장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정원 지시 권한은 없었다”며 “쿠팡에 지시할 수 있는 것은 플랫폼 주무부서인 과기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트북 등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유실, 국제적 (사이버 공격) 배후 사태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송 과정을 협조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쿠팡 측의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쿠팡이 합의되지 않은 결과를 사전에 발표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쿠팡에 조사나 발표를 지시한 적은 없으며, 포렌식과 로그 분석은 과기정통부 주관 민관합동조사단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경찰청이 담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와 협조해 중국까지 가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쿠팡 측의 주장을 들어 “쿠팡은 수사기관도 아닌데 압수수색이나 공식 수사 없이 중국까지 가서 포렌식을 했고, 모든 것을 밝혀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며 “민간 기업이 스스로 수사기관 행세를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고 말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경찰은 쿠팡과 접촉하거나 협조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정원은 이날 청문회에 불참했다.
한편 쿠팡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지난 청문회에 이어 이번 연석 청문회에도 불출석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건의 최종 책임자이자 쿠팡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김범석 의장이 오늘도 출석하지 않았다”며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용우 의원은 “대한민국과 국민을 대하는 쿠팡의 행태는 파렴치한 수준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의원은 “제대로 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며 “몽둥이가 모자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연석 청문회 대신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청문회에 불참했다. 국민의힘 소속 위원장이 있는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도 위원 파견을 거부했다. 이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사보임 절차를 거쳐 과방위원 자격으로 청문회에 참석했다.
청문회에서는 통역 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다. 로저스 대표는 동시통역기 대신 개인 통역사 사용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이의 제기는 적절하지 않다”며 “동시통역기를 착용하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