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80억 달러, 당시 기준으로 9조3천억 원 규모였던 하만을 품는 ‘빅딜’을 성사한 뒤 8년 만에 전장사업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올해에만 2번째 조 단위의 투자를 단행하는 등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경영 행보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뉴스1.
이 회장은 ‘사법리스크’ 탓에 오랜 기간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었다. 최근 수년 동안 삼성의 위기 극복에는 오너경영자의 결단 필요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만큼 이 회장의 공격적 움직임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4일 재계 안팎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글로벌 종합 전장업체의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장사업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만은 독일 ZF프리드리히스하펜(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부를 15억 유로(약 2조6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ZF의 ADAS 사업은 글로벌 ADAS 스마트 카메라 업계 1위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에 제품을 공급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숨에 관련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번 인수 결정은 삼성전자가 사업적으로 어떤 경쟁력을 보일지보다 그 규모나 움직임 자체에 더 큰 관심이 모이고 있다.
최근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난 이재용 회장의 발걸음이 빨라진 상황에서 나온 대규모 투자이기 때문이다.
ZF의 ADAS 사업부 인수는 삼성전자가 2017년 하만을 품은 지 8년 만에 전장사업 분야에서 이뤄지는 인수다.
게다가 올해에만 5월 공조 분야의 플랙트그룹 인수에 이어 2번째 2조 원 규모의 거래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플랙트그룹에 15억 유로를 투입하며 역시 8년 만에 1조 원 이상의 M&A를 재개했다.
이재용 회장은 오랫동안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관련 사법리스크에 묶여 있었다.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에 올랐지만 기대만큼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올해 2월 부당합병 관련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7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항소심 이후 점차 운신의 폭을 넓혀왔다는 평가를 넘어서 불확실성을 완전히 떨쳐버린 셈이다.
그간 삼성을 둘러싸고 위기설이 돌 때마다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에 따른 소극적인 경영인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대표적으로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던 일이나 100조 원이 넘는 현금을 들고도 투자에 인색했던 점 모두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 부재에 원인이 있다는 시선이 많았다.
이 회장은 최근 ‘광폭 행보’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해 임직원을 격려한 것은 반도체 업황이 우상향으로 전환한 시점에서 이 회장이 초격차 회복에 자신감을 나타낸 상징적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22일 삼성전자의 경기 기흥캠퍼스와 삼성캠퍼스를 잇따라 방문해 “기술경쟁력을 회복하자”고 당부했다.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 이사회로 복귀해 중요 결정의 속도를 높이고 책임경영에도 힘을 실을지도 주목된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미등기 임원인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는 재계의 꾸준한 화두다. 이 회장은 2019년 10월 이후로 6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미등기 임원으로 남아있다. 최근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이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놓고 위원회에서도 공감하는 의견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