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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
ⓒShutterstock / Sergey Peterman

초콜릿과 리얼리티

그날 밤 파티장에 모인 귀족들은 옷을 벗어 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서로 살을 뒤섞었다. 욕망엔 지위고하가 없었다. 와인을 나르던 하인들도 바지를 벗고 섹스 파티에 가담했다. 평소라면 눈도 못 마주쳤을 귀족들의 속살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백작 부인들이 떼로 달려와 하인들의 몸을 원하느라 안달이 났다. 그들은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몸을 탐닉했다. 날카로운 교성이 파티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 난잡한 장면을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타락한 귀족 혹은 시대를 앞서간 성적 혁명가로 불리는 문학가다. 그의 문학 세계는 소설 『소돔 120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파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사드는 출생 배경과 달리 순탄치 못한 삶을 보냈다. 무려 30여 년 동안을 감옥과 정신병원에 갇혀 보내야 했을 정도다. 이유는 단 하나. 수준 떨어지는 음란 작품을 생산하고 또 배포했다는 것.

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

영화 < 살로 소돔의 120일> 의 한 장면. 매춘부들이 학생들에게 섹스 테크닉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사드는 초콜릿에 최음제를 섞었다. 정말로 자신의 작품이 현실에 존재 않는 저급한 이야기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로써 사드는 확신했다. 자신의 작품엔 하등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다른 로맨스 소설들이 현실을 왜곡하는 가식의 산물이라고. 순수 문학이란 젠체하는 이들의 욕망을 감춘 거짓말이라고.

선생과 제자의 섹스가 불편했던 그들

1992년 마광수가 구속됐다. 헌정 사상 최초 강의 중 구속이었다. 여대생과 대학 교수 간의 성관계를 다룬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한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면직 처리됐다.

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

마광수는 항변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배하는 엄연한 탄압이라 외쳤다. 하지만 몇몇 진보적인 문인들 외 그를 옹호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문학계는 반겼다. 문학의 격을 떨어뜨린 마광수의 구속은 진즉 이뤄졌어야 할 일이었다고 목소리 높였다. 작가 이문열은 마광수의 작품을 두고 '구역질을 동반하는 보잘것없는 글'이라 혹평하기도 했다.

비난은 비단 문단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구속 사건이 알려지고서야 이 작품을 접하게 된 일반 독자들도 마광수를 향해 거침없는 환멸을 보냈다. 『즐거운 사라』가 소설이라면 소설가의 꿈을 접겠다는 작가지망생부터 아이들이 이 책을 접하고 원만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한 학부모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그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결국 『즐거운 사라』는 금서로 지정되고 마광수는 철창 신세를 져야 했다. 그것으로 온갖 사이트마다 음란 광고가 줄을 잇고, 공중파 방송에서 미성년자들이 스트립쇼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춤을 추고, 불륜을 아름다운 로맨스로 포장하는 드라마가 성행하더라도, 문학만은 그래선 안 되는 것으로 그들은 합의했다.

이모티콘을 활용한 콘텐츠가 문학일 수 있는가

2001년 우리는 그야말로 문학 황금기를 맞는다. 유수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한 마디씩 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문제의 작품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대한민국 문단에서 이처럼 전 국민의 맹비난을 받은 작품이 있을까 싶다.

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는 영화화되기도 했다.

비난의 양상은 정확히 문희준의 그것과 똑같았다. 평소 소설은커녕 책이라면 질색을 하는 이들까지 귀여니 비난에 가세하고 나섰다. 그들은 논리는 한결같았다.

'귀여니의 소설은 문학이라기엔 수준 미달이다.'

정작 문학이란 무엇인지 의문 한 번 품어보지 않았지만, 이들의 논리는 견고했고 목소리는 강력했다. 당시 이 결론에 반박을 했다가 지인에게 들은 핀잔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이런 쓰레기들 때문에 독자들 수준이 떨어지는 거잖냐. 그렇게 되면 똑같이 수준 낮은 작품들만 인기 끌고 말겠지. 누가 소설을 공 들여 쓰겠냐.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문학이 망하는 거야."

대체적으로 당시 비난론자들이 설파하던 논리가 이러했다. 『그놈은 멋있었다』가 작품으로 인정받는 순간 대한민국 문학계는 끝도 없이 추락할 거라고 그들은 확신했다. 스토리 구성, 인물 간의 갈등 관계, 사건의 개연성,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 등 높은 소설 장벽을 무시하고도 스토리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명은 애써 무시한 채 『그놈은 멋있었다』를 저급한 작품으로, 문학을 망치는 수준 떨어지는 작품으로 재단질해 냈다. 그렇게 인터넷 조회수 800만, 단행본 판매부수 50만 권을 기록한 이 작품은 쓰레기로 매도됐다. 콘텐츠만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엄마를 씹어 먹고 구워 먹고 눈깔을 파 먹고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 / 삶아 먹고 구워 먹어 / 눈깔을 파 먹어 / 이빨을 다 뽑아 버려 / 머리채를 쥐어 뜯어 /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 눈물을 흘리면 핥아먹어 /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 가장 고통스럽게

한 초등학생이 쓴 시다. 제목은 <학원 가기 싫은 날>. 어머니를 난도질해서라도 학원을 빠지고 싶을 만큼 학원 가기 싫은 날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른 바 '잔혹 동시'로 논란이 된 작품이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십여 년 전 그때처럼 이 작품을 향한 비난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일부는 아이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며 검사를 받아 봐야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던지기도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출판사는 해당 시가 수록된 시집 『솔로 강아지』 전량 회수를 결정했다. 작가의 어머니가 출판사의 결정에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의 아버지가 어머니와는 다르게 '일부 크리스천들이 이 책은 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책이라고 우려한다'며 출판사의 결정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 가지 이유에서 이번 논란이 상당히 불쾌하다.

하나는 이 논란에 담긴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다운 시를 써야 한다는 저급한 시선' 때문이다. 마치 당대 문학가들이 '순수'라는 존재 않는 판타지를 사드와 마광수에게 강요한 것처럼 기성 세대가 '아이다움'이라는 존재 않는 판타지를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시는 작가의 심상을 표현해 내는 문학이다. 단지 작가가 어리다고 기성 세대가 원하는 감수성을 표현해 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건 문학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혹시 내 아이가 이에 동조할까 두려워하는 학부모의 마음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비난이 그러했다. 내 아이가 볼까 두렵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 말은 그만큼 이 시가 부모들에게 날카롭게 꽂혔다는 것을 방증하는 일이다. 시 속 화자의 심정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기에 꺼낼 수 있는 비난이다. 부모들은 안다. 자신이 아이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면서도 끝 없이 학원으로 밀어 넣는 이유는 하나겠다. 아이가 부모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내 아이가 제도권 내 순위경쟁에 밀려 도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이 시가 불편한 부모들은 <학원 가기 싫은 날>을 '잔혹동시'라 부를 자격이 없다. 진짜 잔혹한 건 본인들이니까.

또 마지막 하나는 평소에 시나 읽는 사람들이 그런 소릴 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내 아이가 볼까 두렵다니, 실소가 절로 나온다. 평소 아이에게 시는커녕 문제집이 아닌 다른 책을 읽히긴 하는지 의문이다.

문학을 망치는 당신들의 시선

사드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은 사드의 초상화와 원고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사드의 유언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후 100년이 지나고서도 사드는 그 이름조차 불러선 안 되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당시 유실된 작품은 물론이고 사드가 미처 완성해 내지 못한 에로티시즘 소설들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마광수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건 천만 다행이다. 탄압을 받긴 했지만, 사드가 살던 시대보다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자유로우니 가능한 일이다.

귀여니는 『그놈은 멋있었다』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는다. 몇몇 작품이 눈길을 끌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안타까운 건, 지금까지도 이런 류의 스토리가 문학이 아닌 저급한 콘텐츠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미스터리 문학이 이에 포함돼 있었다. 지금에서야 히가시노 게이고 등 유명한 일본 작가들 덕에 조명 받고 있는 듯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스터리 분야 한국 작가는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귀여니의 승승장구에 꿈을 포기한 순수문학 작가지망생들보다 귀여니가 받은 맹비난을 목도하고 장르문학을 포기한 이들이 아쉽고 또 문학계의 큰 손실로 느껴지는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학원 가기 싫은 날」을 쓴 아이가 본인의 감수성을 잃진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른들의 폭력에 상처를 받거나 행여 이런 시는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 표현해 내도 되는 감정과 표현해선 안 되는 감정을 스스로 구분 지어야 하는 순간, 지금과 같은 날카로운 통찰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서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즐거운 사라』 속 스승과 제자의 섹스가 불쾌했는가. 『그놈은 멋있었다』 속 이모티콘들이 당신을 화나게 했는가. 그리고 「학원 가기 싫은 날」이 그렇게도 불편했는가. 그럼 비난해라. 다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평소에 관심도 없지만, 그냥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비난이라면 부디 입을 다물어 주길 바란다. 당신들의 그 무식하고 저급한 비난들이 창의적인 문학을 저해해 왔으니까. 문학을 망쳐 온 건 난잡한 섹스를 표현한 변태도, 이모티콘 가득한 문장도, 아이답지 못한 시상(詩想)도 아니다. 바로 당신들의 저열한 시선이었다.

* 이 글은 직썰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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