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업의 전초기지인 실리콘밸리의 시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간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에 집중하던 빅테크 기업들이 로보틱스·하드웨어 기술까지 넘보며 '피지컬 인공지능(AI)', 즉 AI를 물리적 실체에 이식하는 단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공언했던 휴머노이드 로봇의 현장 투입 약속이 곧 실현될 것이다. 단순한 몸을 넘어서 '뇌'와 '눈'을 장착한 로봇들이 인간의 판단이 필요한 복잡한 일까지 넘보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혁신의 최상층에서 벌어지는 기술 혁명은 산업의 기저인 노동 시장에 전례 없는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 전시회 CES 2026 현대자동차그룹 전시관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가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는 모습. ⓒ현대자동차그룹
흔히 로봇 도입이 고용을 감소시킨다고 생각하지만 그간의 통계적 사실은 다소 복합적 양상을 보여왔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산업용 로봇 도입이 활발했던 지역의 고용률은 상승했다. 로봇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이것이 추가적 고용 창출로 이어졌다는 낙관론의 근거다.
하지만 이 수치를 장밋빛 미래로 보기에는 한계도 명확했다. 고용 증가의 혜택이 로봇 운용이 가능한 고학력 청년층에 쏠린 사이 현장에서 숙련도를 쌓아온 45세 이상의 중장년층은 오히려 고용률이 하락하는 통계가 나왔기 때문이다. 로봇이 일자리의 총량은 지켰을지라도 기술 혁신에 적응이 느린 이들에게는 고용 절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수치다.
문제는 이런 과거의 복합적 통계마저 안정적 범주였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데이터는 규격화한 공정 안에서, 또 철저히 사람의 제어 안에서 움직이는 로봇 시대의 결과물이다. 반면 다가오는 피지컬 AI 시대 로봇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비정형 환경에서도 활동하는 만큼 노동 시장에 미칠 영향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 사람처럼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편화하면 지금까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고숙련 공정마저 대체 범위에 포함될 것이다. 기존의 낙관적 고용 통계에 안주하기에는 기술 발전의 가속도가 사회적 적응 능력을 추월할 공산이 큰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로봇세’ 도입 논의를 공론화해야 할 시점이다. 로봇세란 기업이 도입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때 그 로봇을 보유하거나 사용할 때 내는 세금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도입 초기부터 수만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로봇세가 혁신을 저해하는 징벌적 과세라는 생각이 도리어 구시대적 발상일 수 있다. 기술 혁신의 이익이 자본과 특정 고숙련 계층에 과도하게 쏠리는 구조적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로봇세는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타당성을 지닌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이 로봇을 도입해 노동자를 대체하면 국가는 노동자가 납부하던 근로소득세와 함께 기업이 분담하던 사회보장기여금을 동시에 잃게 된다.
단순히 세수가 감소하는 것을 넘어 향후 늘어날 실업급여나 복지 비용을 충당할 재원이 고갈된다는 의미다. 로봇세는 이런 세수 공백을 메우는 것으로 노동, 그런데 기계가 창출한 부를 다시 인간의 가치 제고를 위해 재투자하는 선순환 기금의 성격을 보일 것이다.
국내외에서도 로봇세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로봇 도입과 함께 불거질 고용유연성 문제를 풀기 위해 사회안전망 확보, 임금격차 축소, 노사 신뢰 회복 등 전통적 해결책뿐만 아니라 AI 발전에 대비한 로봇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불을 지폈다.
전 세계적으로도 2010년대 중반 처음 제기됐던 로봇세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일찍이 언급했던 로봇세 논의는 최근 미국에서 법안으로도 추진되고 있다. 과거에는 혁신을 저해한다는 우려로 사실상 배척됐지만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로봇세를 통해 확보한 여력은 전직 교육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재원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노동 소득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가계의 소비 기반을 무너뜨려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선순환을 저해하는 사회적 비용이기 때문이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로봇세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흐름과 기술 발전이 공장의 물리적 경계로 넘어오기 시작한 지금보다 더 적절한 논의 시점은 없을 것이다.
기술과 인식 발전의 간극을 의미하는 사회학의 고전적 개념인 '문화지체'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해묵은 명제를 오랜만에 꺼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랜선이 깔리며 인터넷이 급격히 보급될 때 핵심 화두였던 문화지체라는 개념은 기술 발전의 속도가 제어 불능의 수준에 도달하면서 오히려 논의의 장에서 자취를 감쳤다. 다만 휴머노이드 로봇이 불러오는 노동 시장의 모습은 이전처럼 도덕·문화의 공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흔드는 근본적 변화다. 기술 발전보다 한발 앞선 제도적 논의는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첫 단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