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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작은 뒷산이 있었다. 뒷산으로 불릴 만한 산이 있다는 건 도시 중학생에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나무가 제법 울창한 그 산에는 작은 체육관이 있었다.

난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뒷산에 자주 갔다. 가끔씩 몰래 담배를 피우던 고등학교 형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주로 나 혼자였다. 뒷산으로 난 오솔길도 꽤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체육관 뒤쪽에 난 작은 창이었다. 운동기구 같은 걸 넣어놓았음직한 작은 방에 달린 창이었는데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예뻤다. 그 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방은 굳게 잠겨 있어서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갖지 못했기 때문에 더 좋아했을 수도.......

올훼스의 창

중학교 삼 학년 5월쯤이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랬다.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는 그 뒷산에 올라 작은 창을 바라보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이 열리며 한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해성이었다. 아! 저 아이가 어떻게! 해성이는 우리 반 아이였다. 그는 나보다 더 피부가 하얗고 손가락도 훨씬 길고 눈도 더 까만 아이였다. 게다가 그 아이의 이름은 바다 해, 별 성. Sea Star, 바다의 별. 광수라는 이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름을 가진 그런 아이. 그날 해성이는 순정만화에서 똑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맘에 쏘옥 들어왔다. 얼굴을 내민 해성이도 창을 바라보던 나도 누굴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둘은 잠깐 놀랐고 한참을 마주 보았다.

그날 밤 난 열병을 앓았다. 마치 홍역을 앓듯 열이 잔뜩 올랐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난 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그다음 날 친구가 왔다는 엄마의 말에 설마설마했는데, 해성이었다. 선생님께 주소를 물어 찾아왔노라 말하며 수줍게 웃는 해성이의 얼굴이 빛났다. 그리고 그 아이가 손에 든 황도 통조림. 아, 이렇게 사랑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기장 빼곡히 그 아이의 이름을 채우고 나서야 잠이 드는 날이 많아졌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고백했다. 나는 니가 좋다고. 그 아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 신발 끝만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콩닥콩닥. 몇 시간이 흐른 것마냥 긴 기다림 끝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니가 좋아. 그런데 덧붙이는 한마디. 나 일주일 있으면 호주로 이민 가.

어쩌지?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이라니! 하늘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은 일주일이라도 행복하게 지내는 수밖에. 생각할 것도 없었다. 체육관의 예쁜 창이 있는 방으로 손잡고 뛰어갔다. 문을 여는 건 의외로 쉬웠다. 해성이는 이것저것 여러 도구가 달린 칼(나중에 그것이 잭나이프라는 걸 알았다)로 단번에 잠긴 문을 여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으쓱하는 어깨까지 해성이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여러 운동 기구가 들어 있을 것 같았던 방에는 매트리스만 잔뜩 쌓여 있었다. 유도부가 훈련할 때 쓰는 거라고 했다. 창가에는 작은 책상이 하나 있었다. 해성이는 그걸 딛고 밖을 내다보다가 나를 보았던 것이다. 해성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삼 학년 초에 같은 반 학생으로 배정받았지만 만난 건 5월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했던 날, 이 창을 통해서라고. 우리는 그 창에 이름을 붙였다. 우리 둘 만의 이름을. 눈을 감았다. 시간이 멈추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일주일. 등하교를 같이 했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우리 집에서 삼 일, 해성이의 집에서 삼 일을 같이 보냈다. 해성이가 한국을 떠나는 날, 난 공항에 가지 못했다. 엄마에게 떼를 썼지만 엄마는 내게 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는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없었다. 어린 내가 공항에 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아침부터 전화통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해성이가 떠나고 체육관 예쁜 창을 자주 찾았다. 그 아이는 여전히 그 방에 있었다. 이미지도 소리도 체취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아이는 희미해져갔고 내가 그 방을 찾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는 마침내 이별했다.

그렇게 잊힌 예쁜 창을 다시 만난 건 고등학교 이 학년 때였다. 일본 만화 《올훼스의 창》. 올훼스의 창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유리우스와 클라우스 그리고 이자크. 끝내 비극적인 엔딩을 맞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우습게도 난 '올훼스의 창'을 통해 나의 수줍은 첫사랑을 전설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난 어느새 유리우스가 되었고 해성이는 때로는 클라우스로 때로는 이자크로 등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도 안 되는 동일시이지만 열일곱의 꿈 많은 게이 소년에게는 그 헛된 짓마저도 행복이었다.

그 이후로 해성이를 만나지 못했다. 소식도 전혀 듣지 못했다. 호주로 이민을 가서 잘 살고 있는지,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한때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이름의 친구 찾기 사이트가 유행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성이의 소식을 찾아봤지만 우리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헤어졌기 때문일까? 해성이에 대한 기억은 항상 아련하다. 해성이가 호주로 떠나지 않았더라도 우린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기에 우린 너무 어리고 또 여렸으니까. 해성이가 호주로 떠난 게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고받는 아픈 사랑은 하지 않았으니까.

아주 가끔씩 그의 까만 눈이 생각나면 혼자 슬며시 웃음 짓는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된 그는 여전히 눈이 까맣고 예쁠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 그는 열다섯이다. 그가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 이 글은 <광수와 화니 이야기>(김조광수 김승환 저, 시대의창)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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