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의 해’ 2025년이 남긴 진풍경 가운데 하나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대기업들이 벌이는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다. 개인정보위의 과징금 처분에 반발한 기업들이 대형 로펌을 동원해 개인정보위에 줄소송을 걸고 있지만 법원이 개인정보위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4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벌어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은 과징금 151억4196만 원이 걸린 카카오의 행정소송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카카오 측을 대리했지만 패소했다. 승소한 개인정보위는 중소 로펌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카카오가 개인정보 유출을 신고하거나 이용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며 카카오의 청구를 기각했다.
19일 통신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개인정보위가 개인정보 유출로 과징금을 부과한 후에도 한동안 기업들의 불복 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개인정보위와 기업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재판부가 기업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며 개인정보위 송무팀이 주목받고 있다.
개인정보위 송무팀은 2025년 4월 출범했다. 개인정보위를 상대로 한 기업 소송이 급격하게 늘면서 소송을 전담할 팀의 필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송무팀이 진행하고 있는 기업 소송은 17건으로, 2020년 4건에 비해 6년 만에 4배 넘게 증가했다.
송무팀 인원은 총 5명이다. 이들이 마주한 ‘골리앗’은 김앤장, 태평양, 광장, 세종 등 대형 로펌이다. 17건의 소송에 걸린 과징금 액수는 1477억 원 이상이다. 지난해 송무팀에 할당된 예산은 4억2천만 원. 소송 진행 과정에서 예산이 바닥나기도 했다.
올해 송무 지원 예산은 8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뛰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상대가 대형 로펌이다 보니 자금력에 밀리는 것은 기본이고 언제나 예산과 인력 문제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소송이 장기화되는 것도 송무팀의 애로사항이다. 기업들은 1심 패소 결정이 나더라도 항소를 통해 곧바로 2심을 준비한다. 카카오 또한 1심 패소 결정이 나자마자 항소 방침을 밝혔다. 현재 진행 소송 17건 가운데 7건은 2심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다.
◆ 과징금 규모 늘며 기업 반발 심해져, 다윗과 골리앗 싸움 계속된다
과징금 규모가 커지며 관련 소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보위 과징금 액수는 해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카카오의 151억 원대 과징금은 2024년 역대 최대 금액이었지만 바로 지난해 SK텔레콤이 과징금 1347억9100만 원을 부과 받으면서 기록이 바뀌었다. 통신업계에서는 KT에도 이에 버금가거나 더 큰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과징금 부과 규모는 2023년 9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소위 ‘3% 룰’이 도입되면서 대폭 올랐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 등 법률 위반 사례가 발생하면 개인정보위는 해당 기업 전체 매출액의 3%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매출액의 3% 룰’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과징금 규모를 납득하기 어려워한다”며 “행정소송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민사소송과 형사소송 결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명운을 걸고 소송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과징금의 실효성을 다각도로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과징금이 기업들에 정보보안 강화를 위한 채찍으로 작용하지만 당근으로 작용하는 정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쿠팡과 SK텔레콤을 비교하면 수사에 얼마나 협조했느냐에 따라서 과징금 규모를 줄여주는 정책적 유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쿠팡 사태 이후 더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과징금을 매출액의 3%가 아닌 1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10% 룰’을 핵심으로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