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가 ‘신생아 B형 간염 백신 접종 권고’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ACIP는 5일 회의에서 출생 당일 신생아의 B형 간염 백신 접종을 ‘바이러스 양성인 산모가 낳은 신생아’에게만 권고하는 안을 표결로 채택했다.
이는 1991년부터 유지해 온 미국 연방정부의 권고를 34년 만에 뒤집는 것이다.
그동안 연방정부는 생후 24시간 이내에 모든 신생아에게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왔다. 하지만 새 권고안은 산모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음성일 경우 신생아의 접종 여부와 시기를 의료진과 산모가 논의해 정하도록 하고, 생후 2개월이 지날 때까지는 첫 접종을 하지 않도록 했다.
의료계에서는 거센 반발이 나왔다. 소아 감염병 전문가인 플로르 무뇨스 박사는 로이터 통신의 보도를 통해 “근거 없는 주장에 기반했다”며 “극도로 혼란스롭고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상원 보건위원장을 맡고 있는 의사 출신 빌 캐시디 공화당 의원도 “수십 년간 B형 간염 환자를 치료해 온 전문의로서 이번 결정은 실수”라며 “미국을 더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약사회도 “ACIP의 결정은 증거 기반 공공보건 조치를 뒤로 되돌리는 처사”라며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바뀐 ACIP의 구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6월 ACIP 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하고 자신의 성향과 맞는 인사들로 위원회를 급조했다. 케네디 주니어 장관은 ‘백신 회의론자’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결정이 나온 이후 자신의 SNS에 “매우 좋은 결정을 내렸다”면서 “대부분의 아기는 주로 성행위나 더러운 바늘을 통해 전염되는 질병인 B형 간염에 걸릴 위험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권고안은 상위기관인 CDC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정책으로 확정된다. 현재 CDC의 국장은 공석이며, 대행이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로이터 통신은 그간 CDC가 AICP의 권고를 존중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최종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모든 신생아가 출생 후 24시간 이내에 B형 간염 백신 1차 접종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산모가 B형 간염 양성인 경우 출생 후 12시간 내 면역글로불린(HBIG)를 투여한다. HBIG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투여하는 항체주사다.
이후 생후 1개월, 생후 6개월에 2차, 3차 접종을 실시한다. 6가 혼합백신으로 대체 접종하는 경우 생후 2·4·6개월에 3회 더 접종한다. 6가 혼합백신은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소아마비,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Hib), B형 간염까지 6가지 감염병을 한 번에 예방하는 백신으로, 2025년부터 대한민국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