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건강권은 위해 20년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하고 있는 김록호 과학부 국장은 의사 출신이다. 27살에 달동네였던 사당동 골목 한쪽에 의원을 열었다. 김 국장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서 군대가 면제됐다"며 "3년 동안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고 곧바로 개원했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왜 의사를 꿈꿨을까? 김 국장은 "소아마비 자녀를 둔 부모님의 소원은 제발 의술이 발달해서 치료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멀쩡하게 됐으면 좋겠다는 건데 저도 그 꿈을 얼마나 꿨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김 국장은 어느 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소아마비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찾아갔다. 당시 수술 비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어서 결국 손써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고. 잊고 지냈던 그날의 상처를 떠올렸고, 그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김록호 국장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때 가난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부당함을 몸소 느꼈다. 나도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과 관계없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그렇게 결심했다.
김 국장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의사다. 5공화국, 억압된 시절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개원했던 김 국장. 그는 "사회운동, 민주화운동 하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저는 학교도 안 떠났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거 아니냐?"면서 "그 친구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빚진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이 전국 공단에 흩어진 사람들을 위한 양호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현장 활동이나 시위하거나 건강 문제가 생길 경우, 거기에 돈이 문제가 되면 안 되니까 일단 찾아온 이들에게는 무료로 진료했다.
한국은 당시 산업 재해율 세계 1위였다. 단순히 치료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고, 산업재해에 대한 법적인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고 법적인 권리를 인정받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의사로서 고민이 많았다. "의사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적 분위 상 법적인 과정은 도움 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가 운영하는 사당의원은 산재 피해자들의 상담소 역할까지 했다.
특히 그는 원진레이온 사건을 산재 보상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탠 의사다. 이 사건은 1966년부터 27년간 '원진레이온' 합성 섬유 공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을 말한다. 레이온은 나무 펄프를 이황화탄소와 반응시켜 만든 실로 짠 옷감을 말한다. 이황화탄소는 인체에 노출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맹독물질이다.
경제 개발이 한창이던 1960년대, 일본 식민 지배 현물 배상으로 일본 레이온 회사의 노후화된 기계를 한국에 줬는데. 김 국장은 일본에서 도저히 운영이 불가능한 고철 기계가 들어왔다고 지적했다. 기계가 노후화돼서 걸러져야 하는 이황화탄소가 그대로 배출됐다고.
노동자들이 일하며 이황화탄소를 마시게 됐다. 그렇게 5년, 10년 계속 일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 신장 이상, 심장 마비, 정신 불연 증세까지 나타났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집단 산업재해라고 불리는 원진레이온 사건. 308명이 사망하고 950여 명이 피해를 봤다.
김 국장은 1988년 7월에 한겨레 신문에 1면 기사로 원진레이온 사건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일하던 노동자를 중풍이 걸렸다고 퇴직을 시켰던 것. 그런데 모두 문제의 기계와 밀접하게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가 회사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직업병 관련 박사 과정 공부를 하고 있었던 그가 직접 환자를 찾아가서 정밀 진찰했다. 중풍 환자와 비슷하지만 소통이 잘 안되고 말을 더듬고 갑자기 눈물이 나오거나 거의 치매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뇌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성격이 난폭해지고 가정 폭력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도대체 병명이 뭘까?
피해자들의 의무 기록을 정리하다, '이황화탄소 중독은 온몸 여러 장기에 이상을 가져온다.' 그는 문득 수업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샅샅이 뒤져 1919년부터의 자료들을 내리읽다가 이황화탄소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발견했다. 책에 나와 있는 환자들의 증상이 제가 낮에 봤던 환자들과 정확하게 일치해서 소름이 쫙 끼쳤다고.
김 국장은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타임머신 타고 어떤 터널로 쫙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며 "거기에 나와 있는 환자들과 만나는 거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순간 김 국장은 "소명을 부여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대한민국 의사들 중에 환자를 보고 과학적인 배경을 본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제가 만약에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이분들은 그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고통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때 김 국장은 결심했다. "의사로서 이분들을 받쳐주는 게 내 역할이겠다." 그 이후 의원을 다른 후배들한테 맡겨놓고 거의 전업으로 피해자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회사는 되려 모욕을 주고 완강히 책임을 부정했다. 피해자의 힘만으로 안 되고, 의사의 조언만으로도 안 되니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한 투쟁력을 보이며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결국 국회에서 연락이 와서 공식 산재 여부 판정을 위해서 산재 판정단이 꾸려졌다.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다. 위험한 무릅쓰고 조직검사를 진행했고, 신장의 기저막이 보통 사람보다 몇 배로 두꺼워진 것을 발견했다. 원진레이온 공장은 폐쇄가 결정됐고, 직업병 환자에 대해 보상해 주기로 했다.
당시 산재보상 기준이 너무 낮았다. 전신마비, 실명, 사지 절단 정도의 1등급 산재 보상금이 그 당시 5천만 원 정도였다. 손가락 끝이 잘리는 등 14등급의 산재 보상금은 몇백만 원이었다. 원진레이온 피해자들은 1등급은 1억 원, 14등급을 천만 원으로 해야 한다고 기준을 올렸다. 산재 인정에 이어 보상금 인상 협의에도 도움이 됐다.
원진레이온 사건 이후, 의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버드 보건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가난 속에서 가족을 책임지는 게 가장 급해서 감히 유학을 상상도 못 했던 김 국장. 그는 "원진레이온이 없었으면 유학 갈 생각도 안 했을지 모르겠다"며 "제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원진레이온 회사 측 의사들이 다 교수님들이었다"면서 "우리는 재야 의사들이라서 사회적인 신뢰성이 다르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 하고 오면 돌아와서 그런 일들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연은 정말 신기하다. 그가 하버드 대학에 처음 갔더니, 지도 교수는 "우리 만난 적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인권의사회를 떠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인권 침해가 너무 심해서 의학적인 문제를 조사해야 할 경우, 인권의사회는 파견 조사 후 문제를 널리는 알리는 단체다. 김 국장의 지도교수는 1987년 인권의사회 파견으로 한국에 왔던 사람이었다.
6·10 항쟁하면서 박종철 열사 사망 이후에 엄청나게 최루탄 많이 쏠 때다. 김 국장의 지도교수는 당시 최루탄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조사하기 위해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사당의원 김록호 원장에게 가보라고 했던 것.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전화가 왔고 김 국장은 1초 만에 '이걸 도와주면 병원 문 닫을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김 국장은 "병원 문 닫는 것 때문에 돕지 않으면 부끄럽겠다"고 생각해서 응했고, 최루탄 파편들이 박혀 있는 엑스레이 사진과 자신이 봤던 최루탄 피해자들의 의무기록을 전달해 줬다.
'최루가스는 진압제인가, 독성화학 무기안가?'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저널에 실렸다. 그는 "그분이 지도 교수가 되어 있더라"며 "순전 우연인데, 박사 과정 하는 동안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교수가 저의 과거 활동이나 왜 공부하러 왔는지까지 알고 하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원진레이온 사건의 공을 인정받아 슈바이처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45살 나이에 WHO의 신입사원이 됐다. 그는 20년째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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