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News는 가깝고도 먼 곳인 북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매주 북한 사람에게 한 가지씩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주에는 방콕에 사는 다렌이 '북한 사람들의 연애'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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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해서 연애할 시간이 없는 건 아니죠. 그렇기에 북한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서는 안 될 겁니다.
제가 북한에 살던 시절, 우리는 그 어느 나라에도 여행을 갈 수 없었고 표현의 자유 역시 누리지 못했어요. 정부는 이 모든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할 수 있었지만 사랑만큼은 막지 못했습니다.
제가 20대를 보내는 동안 북한 사회는 많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기근에 이은 경제 파탄 때문에 국경에는 더 많은 구멍이 생겨났고 서구 문화가 유입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정권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의 청년들은 연애에 대해 너무나도 보수적인 과거의 규범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인을 '혁명 동지'로 바라보길 바라지만 우리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 개념입니다. 억압적인 상황 아래에서 우리는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연기할 뿐입니다.
사랑과 성에 대한 북한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규범은 역시나 보수적인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서구의 데이트 문화와도 완전히 다릅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우리가 정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저 이 개념을 억지로 수용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어떻게 연애 상대를 만날까요? 이는 연애에 관심을 가지는 나이가 언제인지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저는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저의 십대 시절의 기억들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때 이후로 저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당시에 저는 제 첫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그녀에게 헌신하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저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저보다 약간 어린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저희 부모님과 가까운 사이였고, 그 친구 역시 제 여동생과 친구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저희의 사이는 그녀가 입대하면서 끝났고, 저는 혼자 남겨졌습니다.
저는 함께 아는 친구를 통해 두 번째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그녀가 먼저 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의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으며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습니다.
지독히도 감성적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저와 친구들은 밖이 완전히 깜깜해진 후에야 공원으로 데이트를 나갔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은 공개된 장소에서 데이트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낮 시간 동안 강이나 공원에서 데이트를 한다면 장담하건대 어른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밤 늦은 시간에 나무로 가려진 공간이나 아파트 지하, 혹은 생일파티와 같은 친구들의 무리 속에서 몰래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비밀연애를 할 이유는 줄어들었습니다. 이 나이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극장, 공원, 그리고 심지어는 김정일 동상이 있는 광장의 벤치에 앉아서도 데이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평양에 살았을 적, 여자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사교모임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휴일이면 인민들과 젊은이들을 위한 사교모임이 개최됩니다. 큰 모임과 댄스파티가 김일성 광장을 포함한 곳곳에서 열립니다. 젊은이들은 댄스파티에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언제나 그렇듯 즐겁고 신나게 이 행사들을 즐깁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곳이 바로 젊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곳입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한 남자는 여자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말을 건네겠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그는 그녀의 연락처나 일하는 곳을 물어볼 것입니다. 만일 그녀도 그 남자가 마음에 들었고, 그녀 역시 애인이 없다면 연락처를 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북한에 살았을 당시 20대들이 연애를 시작하던 모습입니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에게 북한의 엄청나게 긴 군 복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 복무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0년 간 연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여성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대 이후인 20대 후반에 이르면 소위 '맞선'과 비슷한 만남이 나타납니다.
종종 친척들이 인맥을 이용해 만남을 주선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런 '맞선'에서 누군가를 만난 것을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군 복무 이후 많은 남성들은 부모가 짝지어준 여성과 결혼합니다. 북한의 남편들이 퉁명스럽고 자상하지 않은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한 걸음 물러서 북한 사회의 현실을 관찰한다면, 북한 사람들 역시 세상 어느 곳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부모님을 존경하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문제는 북한 사회 속의 잔혹함입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존재하는 북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당신과 그리 다르지도 않고 특이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고립에서 비롯되는 보수적인 가치들은 현대의 다른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그 둘이 실제로 연애 중일지라도 서로를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라고 규정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둘이 서로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그저 친구일 뿐이고, 그 둘이 서로를 연인으로 생각한다면 연인이겠지요.
당신이 북한을 들여다보는 창은 작을 뿐더러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도 당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들이 모르는 유일한 것은 자유와 인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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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강지민은 2005년에 평양을 떠난 20대 후반의 남성입니다. 이 글은 Elizabeth Jae와 최하영이 번역했습니다. 메인 사진은 Roman Harak의 소유입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