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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세계관 변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 아니라 송태섭인 이유 알고 나니 무릎이 탁 쳐진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주)NEW

비록 내가 80년대 생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수업 시간에 '슬램덩크'를 돌려보다가 압수당하거나 매주 서점으로 달려가 신간을 찾아 헤맨 기억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램덩크'는 나의 학창 시절이었다. 난방이 충분히 돌지 않아 아직 싸늘한, 이른 아침의 학교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 하루는 윤대협이 표지에 그려진 완전판 14권을, 또 하루는 정대만이 그려진 6권을 읽으며 언 발을 녹이던 그때 그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피가 끓는다.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에서 한번, "울지마라"에서 또 한번, "이젠 내겐 링밖에 보이지 않아"에서 다시 한번. 그저 흰 종이에 까만 곡선과 직선이 엉켜 프린트됐을 뿐인데. 한 페이지, 한 컷, 한 글자와 한 점에 내 가슴은 왜 그리도 세게 요동쳤는지.' 슬램덩크'에 감화된 수많은 동지들이 그랬듯 나 역시 농구공을 샀고, 그 공은 창고에서 먼지 이불을 덮었다. 대신 추운 겨울이면 이따금, 다시 책장을 펼쳐 몇 번이고 그 뜨거운 열정과 승리의 세계에 뛰어들어 몸을 불살랐다. 그러기를 10년. 감히 바라지도 않던 소식이 들려왔다.

슬램덩크 영화화,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연출!

개봉일에 맞춰 휴가를 내고 극장으로 달려가 더빙판과 자막판을 연달아 감상했다. 뱃속이 뜨거워지는 장면이 있었고 눈물 나는 대사가 있었다. 뭐, 때론 머리가 차가워져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기도 했지만. 기자로서의 본분을 아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좋았다고. 나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또 보자고.

 

왜 주인공 강백호 아니고 송태섭인가?

북산 공격의 중심 송태섭. ⓒ(주)NEW

먼저 강백호, 서태웅 등을 제치고 영화의 주인공이 된 송태섭 얘기를 해야겠다. 북산 농구부에서 포인트가드(코트 위 감독, 전술적 이해가 뛰어난 선수가 주로 소화) 송태섭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가 빠른 스피드와 넓은 시야, 영민함과 안정적인 멘탈로 경기를 이끌지 못했다면 북산 농구부 전국대회 진출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서사와 비중은 팀내 다른 멤버들에 비해 많이 왜소했다. 천재(강백호, 서태웅)라는 호칭도, 감동적인 서사(정대만, 채치수)도 갖지 못 했던 송태섭. 그런 그가 바로 극장판 <슬램덩크> 주역이니,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다.

"원작을 그대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 싫어서 다시 ‘슬램덩크’를 한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하고 싶었다. 송태섭은 만화를 연재할 당시에도 서사를 더 그리고 싶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3학년에는 센터 채치수와 드라마가 있는 정대만, 강백호와 서태웅은 같은 1학년 라이벌 사이라서 2학년인 송태섭은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송태섭을 그리기로 했다."

오히려 좋아. ⓒ(주)NEW
오히려 좋아. ⓒ(주)NEW

서사가 확연히 부족한 것이 오히려 득이 된 경우. 송태섭은 '슬램덩크'에서 받지 못한 스포트라이트를 <슬램덩크>에서 충분히 확보했다. 극장판 <슬램덩크>는 2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의 절반을(체감상 그 이상을) 송태섭의 개인사 회상에 할애한다. 이는 만화 팬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송태섭은 왜 농구를 하는 걸까?'부터 '어쩌다 문제아가 됐을까?'까지. 해묵은 질문들이 해소되는 순간은 시원하다.

그런데 알려진 바와 같이 <슬램덩크>는 산왕전, 즉 북산고 농구부 대 고교농구 절대강자 산왕공고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산왕전은 원작 중에서도 백미, 가장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유명하다. 개인에 따라 송태섭의 개인사에 치중된 연출이 산왕전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농구 경기에 좀 집중할만하면 끼어드는 송태섭의 과거 회상은 숱한 드리블과 패스로 쌓아 올린 긴장감을 순식간에 허문다. 회상의 소재 자체가 무겁고 진지하거니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구태의연하다. 송태섭이 문제아가 된 이유, 그럼에도 농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 팔목 보호대가 두 개인 이유, 등 번호 7번을 고수하는 이유. 물론 알고 싶다. 하지만 북산 최후의 결전 산왕전의 전반부가 사실상 스킵되는 상황에서 '과거고 뭐고, 눈앞의 상대에 집중해!' 외치고 싶은 마음은 나만의 것일까.
 

n차 관람 포인트: 가슴 웅장해지는 OST 외 다수

북산! ⓒ(주)NEW

​하지만 나는 앞서 말했다. 또 보자고. 수십 번 읽어 꿰고 있는 스토리와 기대만큼 매끄럽지 못한 흐름에도 단연코 n차 관람을 결심한 이유는 일단 OST다. 애니메이션의 묘미가 또 책 속에 없는 사운드 아닌가. 펜 터치로 순식간에 완성된 북산 5인방이 종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오프닝 그리고 송태섭이 이명헌-정우성의 더블팀을 돌파할 때 울리던 묵직한 메탈 연주곡은, 입술 꽉 깨물고 다음 관람을 결심하게 한다. 

"오프닝의 경우 하나의 음으로 시작해서 점점 여러 가지 소리로 늘어가는 조금 불온한 분위기의 긴 인트로를 원했다. (곡을 만들 때) '이런 느낌을 원한다'라는 이미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조율했다." 

<슬램덩크>의 OST는 작가가 "팬"이라고 밝힌 The Birthday와 10-Feet가 맡아 작곡했다. 기존의 TV 애니메이션 주제가 중에서는 일본판 1기 오프닝 '君が好きだと叫びたい'(너를 좋아한다고 외치고 싶어)와 극장판 엔딩 'Endless Chain'을 맡은 BAAD의 곡과 유사해, 아련하기보다는 거침없다.

정대만, 서태웅. ⓒ(주)NEW
정대만, 서태웅. ⓒ(주)NEW

​원작에 없는 '조각'을 찾아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대만과 송태섭의 첫 만남이라던가, 전국 1위 정우성의 소원 등 만화에는 없던 장면들이 더해져 인물들 간 서사의 빈자리를 촘촘히 메운다. 한편 코믹 신이나 관중석 반응, 경기 해설, 그리고 송태섭과 한나의 러브라인은 과감히 삭제됐다.

"만화라면 간단한 코믹 신을 막간에 넣을 수 있지만 영화는 스크린 사이즈가 일정하여 구석구석에 개그를 넣어도 보이지 않는다. 만화는 만화, 영화는 영화만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농구다움'을 우선시하는 결론을 내렸다."

주역은 아니지만 짧게나마 등장하는 반가운 얼굴들도 빼놓을 수 없다. 능남의 천재 윤대협, 괴물 변덕규가 강백호의 회상을 통해 등장하며 해남의 르브론 이정환은 등 번호 8번을 달던 시절의 뒷모습만 감질나게 보여주니 어쩌겠는가. 또 가서 봐야지.

 

북산고 유니폼부터 한정판 피규어까지! 굿즈 총공세

놓칠 수 없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공식 인스타그램
놓칠 수 없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공식 인스타그램

​작품 외적으로도 n차 관람이 권장되는데. 오는 7일에는 메가박스 돌비시네마 특전으로 프레임 이미지 카드를 선착순 증정한다. 카드에는 북산 5인방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벤트관으로는 코엑스·안성스타필드·남양주현대아울렛 스페이스원·대구신세계(동대구)·대전신세계 아트사이언스.

​약 200종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도 열린다. 1월 26일~2월 7일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에서는 한정판 공식 피규어, 유니폼 패키지, 콜라보 의류, 스몰레더 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10만원 이상 구매 고객을 위한 캐릭터 특전 카드도 준비돼 있다. 특히 한정판 피규어 구매를 위해서는 오픈 첫날 새벽 웨이팅도 불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발 빠른 이들은 벌써 성우 무대인사 예매도 마쳤을 것. 오는 8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는 강수진(강백호 역), 신용우(서태웅 역), 엄상현(송태섭 역), 장민혁(정대만 역), 최낙윤(채치수 역), 소연(이한나 역) 성우가 자리해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슬램덩크'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주)NEW
'슬램덩크'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주)NEW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슬램덩크'를 만들었다. 만화는 만화로,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는 영화로, 새로운 하나의 생명으로 만든 작품이다. 결국 뿌리는 다 같고, '슬램덩크'를 이미 알고 있더라도, '이런 슬램덩크도 있구나'라는 기분을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다."

유해강 기자 haekang.yo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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