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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리즘 서승완 칼럼
메타리즘 서승완 칼럼

구미호(九尾狐)를 아는가? 황금빛 털에 9개의 꼬리를 가졌다는 전설 속의 여우. 전승에 따라 사람의 간을 노리는 요괴나, 인간 남자와의 100일 살이를 견디는 영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들의 부단한 노력은 모두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인데, 대부분의 구미호 서사는 좀처럼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략에 속아 사람의 간을 구하지 못하거나, 꼭 99일째 되는 날에 사고가 터지는 식이다. 그런데, 그 구미호가 메타버스 세계를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그곳에서만큼은 ‘사람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실제로 그런 일이 필자가 운영하는 ‘영남대 메타버스(YUMC)’에서 일어났다. ‘불여우’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여우 아바타를 사용하면서, 줄곧 자신을 ‘사람이 되고 싶은 여우’라 소개했다. 마치 여우의 울음소리를 기호화한 듯 느낌표(!)를 과다하게 사용했고, 여기에는 가공의 ‘여우 나라’에서 왔다는 자신만의 설정이 뒤따랐다. 재밌는 점은 그런 불여우를 바라보는 나머지 학생들의 태도였다. 불여우가 만난다는 ‘인간 남자’에 관해 연애 상담을 해주고, 불여우를 위한 사람 이름을 지어주었다. 여우가 먹는 열매를 불여우에게 선물하는 학생도 많았다. 메타버스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이들에게 불여우의 존재란, ‘연기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되고 싶은 진짜 여우’였던 것이다.

결국 메타버스가 무엇인가? ‘모두가 아바타 또는 개별적인 어카운트로 서로를 마주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이곳에서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자아 정체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물리 세계에서 가지던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속성을 모두 제거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한 개인이 여러 개의 어카운트로 활동하거나, 여러 개의 아바타로 자신을 표상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메타버스를 찾는 유저들은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여러 이질적인 자아들을 취사선택하여 표출한다. 그런 점에서 ‘메타버스 속 여우의 존재’는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이미  Z세대들은 그런 여우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염려의 시각도 있을 것이다. ‘현실 도피’나 ‘정체성 상실’, ‘신분 위조’와 같은 부정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영남대 메타버스에서도 ‘다중 아바타를 통한 범죄’ 사건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 속 ‘자아 전환’을 섣불리 ‘자아 분열’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아의 확장’이라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직접 체험케 하고, 단순한 시뮬레이션 이상의 경험 확장을 이룰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경험은 현실에서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아바타로 살아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던 한 친구의 소감처럼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는 철학의 가장 오래된 물음 중 하나이자, 많은 이들이 일생을 살며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심리 검사나, 명리학(사주팔자) 같은 것도 이 질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자아라는 것은 구체적인 형태로 존재하여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현실 속에서도 다양한 관계와 맥락에 맞춘 여러 역할과, 그 역할에 걸맞은 모습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자아’라는 것이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어려운 일이지만,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은 아마 평생의 과제가 될 것이다. 메타버스 속에서 ‘자신의 다양한 자아를 경험해보는 것’도 이 과정에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여정이 외롭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분명 ‘사람이 되고 싶은 여우’도 함께 해줄 테니까.

[서승완 대표] 서승완은 유메타랩 대표이자 전국 대학 메타버스 연합회의 회장이다. 청년의 눈높이에서 전공인 철학과 메타버스 세상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수의 대학 및 공공기관에서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 및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메타버스에 살기로 했다’, ‘인스타로 보는 동양고전’ 등이 있으며 최근 메타버스 전문 미디어 플랫폼 ‘메타플래닛’, ‘메타리즘’에서 전문가 칼럼을 집필 중이다.

metarism@metaplanet-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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