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기업 대 기업) 비즈니스 중심의 사업 구조를 B2C(기업 대 소비자)로 확장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룹 총수인 이호진 전 회장의 자녀 승계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 연합뉴스
21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태광그룹 화장품 계열사 ‘실’은 최근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새로 출시한 브랜드 ‘사핀’을 공개했다.
사핀은 한국 바다에서 얻은 원료와 해양 바이오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지속가능 뷰티 브랜드’라고 회사 쪽은 설명했다. 단순 피부 트러블 개선을 넘어 피부 본연의 회복력과 재생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실은 태광그룹이 독자적인 뷰티 브랜드를 전개하고자 1월 설립한 코스메틱 전문법인이다. 태광산업의 100% 자회사다.
이에 발맞춰 2025년 태광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애경산업은 자회사 ‘원씽’을 흡수합병했다고 공시했다. 원씽이 100% 자회사여서 합병은 신주를 발행하지 않는 소규모 합병으로 진행됐다.
원씽은 자연 유래 원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스킨케어 브랜드로 2019년 출시됐다. 2020년 애경산업이 지분을 인수하며 자회사로 편입했다.
별도 법인으로 있던 원씽을 애경산업 내부로 합병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화장품 사업을 내부에 통합해 사업 시너지 효과를 더욱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했다.
애경산업은 3월 태광그룹 계열사로 출범하면서 화장품 사업 확대를 핵심 성장 전략으로 제시하고, 화장품 매출 비중을 2028년까지 5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익성이 좋고 현재 전 세계적인 K-뷰티 열풍에 편승할 수 있는 뷰티 분야에 더 힘을 주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애경산업은 2025년 실적 기준으로 생활용품 66%, 화장품 33%의 매출 비중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태광그룹은 애경산업과 실, 그리고 5월 회생절차 종결로 계열사로 편입된 동성제약의 ‘뷰티 삼각편대’ 중심으로 뷰티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역할분담 전략도 마련했다. 애경산업은 연구개발(R&D) 및 생산과 유통, 해외사업 확대를 담당하고, 실은 신규 브랜드 개발과 브랜딩, 콘텐츠 마케팅 등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동성제약은 기존의 더마 및 헤어케어 사업을 확대하면서 뷰티 사업과 시너지를 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애경산업 서울 마포 본사 ⓒ 애경산업
◆ 뷰티 확대는 오너 3세 승계 전략
태광그룹의 뷰티 사업 확대가 이호진 전 회장의 자녀 승계 기반 닦기 전략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 전 회장은 이현준씨, 이현나씨 등 1남 1녀를 두고 있다.
특히 뷰티 사업이 딸인 이현나씨 몫이라는 추측이 이어지고 있다. 아들인 이현준씨에게 태광산업 중심의 기존 그룹 사업을 물려주고 이현나씨에게는 신사업이라고 볼 수 있는 애경산업 중심의 뷰티와 소비재 사업을 떼어주는 시나리오다.
이는 2025년 애경산업을 인수할 때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애경산업 인수에 두 사람이 주주로 있는 사모펀드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자체 현금이 풍부한 태경산업이 애경산업 인수에 굳이 사모펀드를 끼워넣은 것이 두 자녀의 지배력을 처음부터 확보하고 시작하겠다는 이 전 회장의 의중이라는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앞서 태광산업은 2025년 재무적투자자(FI) 두 곳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애경그룹 지주회사인 AK홀딩스가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13%를 인수했다. 2025년 10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2026년 3월 인수대금을 최종 납입했다.
애경산업의 지분구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이현나씨 등 두 자녀의 이름이 등장한다.
우선 애경산업의 최대주주로는 각 31.56%를 보유한 태광산업과 뷰티라이프원이 올라 있다. 뷰티라이프원은 ‘티투유안타뷰티라이프사모투자 합자회사’가 애경산업을 지배하기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다.
티투유안타뷰티라이프사모투자는 사모펀드인 티투프라이빗에쿼티(PE)와 벤처캐피탈인 유안타인베스트먼트가 함께 결성했다. 현재 두 회사가 공동 업무집행사원(GP)을 맡고 있다.
여기에서 등장한 티투PE가 태광그룹과 오너 일가가 주주로 있는 사모펀드다. 티투PE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태광산업과 티시스가 각 41%, 이현준씨와 이현나씨가 각 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현준씨와 이현나씨는 태광산업과 티시스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태광그룹 쪽은 애경산업을 통한 경영승계를 논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인수 초기 경영 안정화를 꾀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 전 회장이 여전히 여러 오너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승계 작업을 눈에 띄게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부담이 클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현재 이 전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현준씨와 이현나씨는 아직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그룹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와 부동산시행사 등에 지분 참여를 하면서 자산과 지배력을 늘리며 승계 기반을 닦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