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이 또다시 물에 잠겼다. 도로가 침수되어 운전자들은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버리고 집으로 겨우 돌아가야 했고, 지하철 역사엔 폭포처럼 물이 들어찼다. 누군가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80년대' 밈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지만 가볍게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현재 8명이 숨졌고, 6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상태다.
물론 기후 변화로 인한 폭우가 쏟아지며 강우량이 처리 용량을 넘어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나, 폭우로 인한 피해가 과거에도 있었던 만큼 서울시는 예방 대책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듯 보인다.
폭우 피해 차량들. 출처: 뉴스1
폭우 피해 차량. 출처: 뉴스1
왜 유독 강남만 이럴까?
폭우에 범람한 관악구 도림천. 출처: 뉴스1
강남이 침수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과 2011년 강남 일대는 이미 폭우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바 있다. 왜 유독 강남에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2015년 3월 서울시가 발표한 '강남역 일대와 침수 취약 지역 종합'에 따르면 강남역 일대의 고질적인 침수 원인은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이는 항아리 지형 ▲강남대로 하수관로 설치 오류 ▲반포천 상류부 통수능력부족 ▲삼성사옥 하수암거 시공 오류 총 4가지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은 강남역 일대의 지형적 특징에 있다. 강남역 부근은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서초와 역삼 등 고지대에 내렸던 물이 고이는 '항아리 지형'이다. 강남역은 바로 옆에 위치한 역삼역보다도 14m나 낮아 집중호우가 내리면 빗물이 고여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다. 게다가 과잉 개발로 아스팔트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고인 빗물이 땅속으로 흡수되기도 힘들다.
속수무책인 대책들
폭우에 침수된 차량들. 출처: 뉴스1
물론 이에 대한 대책이 준비되었다. 서울시는 2015년 '강남역 일대 및 침수취약지역 종합배수 개선대책'을 발표하며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바로잡는 배수구역 경계조정 ▲서울남부터미널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분산하는 지하 배수시설인 유역분리터널 공사 등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2016년 상반기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던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는 예산과 설계 문제로 2024년까지 연장된 상태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공사 또한 계획보다 2년 반 지연된 2018년에야 착공, 올해 6월 완공되었지만 애초에 시간당 95mm의 강우를 방어할 목적으로 설계된 만큼 8일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폭우에 속수무책인 유역분리터널 공사를 지적하며 "현재 30년 빈도 강우 대응을 목표로 대책을 마련해왔는데 이번과 같은 폭우에 대응하려면 정부와 협의해 강우 대응 목표를 올려야 한다"며 "예산 등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예견된 피해
폭우 피해 빌라. 출처: 뉴스1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올해 수방 및 치수 예산을 900억 원가량 삭감한 점을 들며 이번 침수를 '예견된 피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수방 및 치수 분야에 5천99억 원의 예산을 배정한 서울시는 이번해 4천202억 원을 배정하며 896억 원(17.6%) 가량의 예산을 줄였다.
2010년 광화문, 강남 등의 도심이 침수되고 2011년 우면산 산사태를 겪은 후 서울시의 수방·치수 예산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2019년 6천168억 원까지 늘었던 수방·치수 예산은 이후 2020년부터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는 5천억 원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상과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상황에 이번 침수 피해까지 합쳐지며 서울시의 예산 삭감이 성급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예산 삭감 관련 문제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시급한 방재시설 보강이나 유지에 들어가는 예산은 크게 줄지 않았다"며 "이번에 예상을 넘어서는 폭우가 발생해 피해를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