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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깎기 엄마와 공부의 배신
ⓒgettyimagesbank

예전에 미국에서 '축구엄마'(soccer mom)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직접 자동차를 몰아 아이들을 어린이 축구교실에 데려다 줄 정로로 열성적인 엄마를 뜻하는 말이지죠.

실제로는 단지 어린이 축구교실뿐 아니라 바이올린 레슨, 그림 그리기 레슨 등 이곳저곳의 사교육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엄마입니다.

얼마 전에는 '헬리콥터 엄마'(helicopter mom)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더군요.

헬리콥터를 타고 자식 위를 빙빙 돌면서 무엇을 해줄까 살펴보는 엄마를 뜻하는 말로서요.

그러니까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다 감시하면서 일일이 개입하는 엄마가 바로 헬리콥터 엄마지요.

이삼일 전 신문에는 '잔디깎기 엄마'(lawn mower mom)이라는 가장 따끈따끈한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잔디깎는 기계처럼 아이의 앞에 가로놓인 장애물을 모두 제거해 주고 다니는 극성 엄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 표현이 모두 엄마의 극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나, 잔디깎기 엄마가 가장 극성스러운 엄마라는 느낌을 줍니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최근 미국 명문대에 자살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그 원인이 잔디깎기 엄마의 극성에 있다는 인식에 있습니다.

어머니가 모든 일에 간섭해 대신 처리해 주는 바람에 자기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학습하지 못한 학생이라면 조그만 역경이라도 헤쳐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버리지 않겠습니까?

내가 미국에 유학하고 있던 시절만 하더라도 미국 학부모의 극성이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극성인 어머니가 고작 축구엄마 정도였지요.

그런데 미국 사회의 경쟁구도가 점차 심화되면서 극성의 도가 점차 커져 드디어 잔디깎기 엄마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잔디깎기 엄마와 공부의 배신

최근에 읽은 『공부의 배신』(Excellent Sheep)이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등장합니다.

Yale대학 교수였던 W. Deresiewicz가 쓴 이 책의 부제는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인데, 이 부제를 보면 이 책의 내용을 휠씬 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무척 똑똑해 보이는 미국 명문대 학생들이 실제로는 바보나 다름없는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중요한 원인으로 부모의 극성과 입학사정관제로 대표되는 대학입시제도를 들고 있습니다.

인생에 대해, 혹은 공부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고 그저 명문대학 입학을 위한 스펙쌓기에만 열중한 학생이 제대로 된 인성과 지성을 갖출 리 없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닥친 어려움을 하나의 도전(challenge)으로 보는 진취적 기상은 찾아볼 수 없고,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도움이나 바라고 혼자 힘으로는 그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미국의 명문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입니다.

그런데 '잔디깎기 엄마'라는 말도 그렇고 이 『공부의 배신』이란 책도 그렇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얘기인데도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정도에서 우리 사회가 미국 사회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게 분명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들의 자살도 미국 사회와 똑같은 뿌리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MB정부는 사교육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입학사정관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입학사정관제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착각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공부의 배신』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듯, 막상 미국에서는 이 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갖는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부모의 극성스런 간섭의 여지를 극대화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공부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스펙쌓기의 경우에는 부모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니까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잔디깎기 엄마의 등장을 가져온 것처럼 우리의 입학사정관제도 주위에 수많은 잔디깎기 엄마의 등장을 가져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치맛바람이 극성을 부리던 우리 사회가 입학사정관제의 도입과 함께 '치마태풍'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입으로만 '창조경제'를 부르짖으면 뭐합니까?

이 잔디깎기 엄마들이 아이들을 주체적인 생각도 할 수 없는 바보천치로 만들어 버리는데요.

공부하는 기계, 스펙쌓기의 천재들이 도대체 무슨 창조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까요?

창조적인 생각은커녕 자신의 행복한 삶의 길조차 찾지 못하고 헤매는 불쌍한 사람만 양산되고 있습니다.

오래 전 어느 학부모가 자기 아들이 경제학원론 책을 썼으니 감수해 달라고 책을 보내왔습니다.

책 그 자체는 그럴듯하게 만들어졌지만, 고등학생 혼자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했겠습니까?

대학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학부모가 돈을 처들여 그걸 만들어내고 아들 이름을 붙였겠지요.

고등학생 때 논문을 쓰면 입학사정관에게 잘 보일 수 있다고 고등학생 사이에 논문 쓰기가 유행이라고 하는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고등학생이 논문을 쓰면 무얼 제대로 쓰겠어요?

물론 천재 같은 사람이 극소수 존재하겠지만, 지금 고등학생이 학부모의 갖가지 지원을 받아 만드는 논문들이야 거의 정크급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남이 대신 써주는 논문이라면 어린 나이부터 부정행위를 배우는 셈이구요.

도대체 난마처럼 얽혀버린 우리 교육을 어디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 사회와 우리 사회에서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병폐가 한증 더 심각성을 띠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모두가 우리 교육에 대해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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