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의 바이낸스 해킹 배후로 지목된 북한이 수개월 전부터 공격을 준비해 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이버 공격은 북한 정부의 주요 외화 수입원 가운데 하나가 됐으며, 이를 위해 조직적으로 해커를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탈취한 자금은 주로 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바이낸스는 2026년 10월29일 역대 최대 규모의 가상 자산 해킹 피해를 입었다. ⓒ펙셀스
닛케이아시아는 5일 "최근 발생한 바이낸스 암호화폐 탈취 사건은 몇 개월 전부터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10월29일 바이낸스에서 해킹 공격이 발생해 63억4천만 달러(약 8조5천억 원) 규모의 자산이 무단으로 유출됐다. 바이낸스는 이에 대응해 출금 서비스를 긴급 중단했으며, 1일부터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재개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0월31일 바이낸스 해킹 사건의 배후로 북한 해킹 그룹인 '트레이더트레이터'를 지목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4일 "(이 주장은) 미국의 변함없는 대북 적대 정책의 연장선이다"며 북한의 개입을 부인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해킹 전문가들은 북한이 해외 기업에 수개월 동안 침투한 뒤 신속하게 디지털 자산을 탈취하는 사이버 공격 수법을 개발했다고 분석했다.
이번 바이낸스 해킹 사건도 이와 유사한 수법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바이낸스가 3일 발표한 초기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바이낸스의 한 엔지니어가 변조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았다.
바이낸스는 이를 감지하고 해당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기기를 교체하는 한편 계정 정보도 변경했다. 그러나 공격자는 이미 해당 엔지니어의 직책과 '바이낸스 지갑' 팀 동료들의 신원을 파악한 상태였다고 바이낸스는 설명했다.
바이낸스 지갑은 사용자가 가상 자산을 보관하고 거래하거나 예치·전송할 수 있도록 바이낸스 계정 안에 마련된 전용 공간이다. 은행 계좌와 비슷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9월에는 또 다른 바이낸스 엔지니어가 구인 플랫폼에서 가짜 채용 담당자의 연락을 받고 코딩 과제로 위장한 악성 코드를 내려받는 일이 발생했다.
바이낸스는 공격자들이 10월 해킹된 컴퓨터와 내부 AI 도구를 이용해 지갑 개발자들의 시스템에 접근했다고 밝혔다. 해킹 당일인 10월29일에는 탈취한 계정 정보를 이용해 스크립트를 실행했고, 4분 만에 2억3300만 리플(주요 암호화폐, 약 4089억 원)을 비롯한 자산을 훔쳤다. 무단 이체는 거의 4시간 동안 이어졌다.
닛케이아시아는 이번 바이낸스 해킹 사건이 국제 제재로 재정난을 겪는 북한에 사이버 절도가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미국 블록체인 분석 업체 체이널리시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 해커들은 2025년 약 20억 달러(약 2조7천억 원)을 탈취했다. 이는 2025년 전 세계 가상 자산 탈취액의 거의 60%에 해당한다.
북한이 수개월 동안 은밀하게 침투 작전을 벌인 뒤 순식간에 디지털 자산을 빼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큰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외교·안보 연구 기관 스팀슨 센터의 마틴 윌리엄스 북한 전문가는 닛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해킹은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계획된다"며 "일단 공격 목표가 정해지면 정확하게 실행되어 탈취한 암호화폐 자산을 최대한 빨리 빼돌리고 자금을 세탁하는 범죄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4년 5월 북한 해커들이 일본 암호화폐 업체 DMM에서 3억800만 달러(약 4135억8천만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훔친 사건에서도 바이낸스 해킹과 유사한 수법이 사용됐다.
FBI와 일본 경찰청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당시 해커들은 링크드인에서 채용 담당자로 위장해 지갑 소프트웨어 업체 진코(Ginco)의 직원에게 악성 코딩 테스트를 보냈다. 이후 해커들은 이 직원의 접근 권한을 이용해 DMM의 거래를 조작했다.
국제 인권 감시 단체 글로벌라이츠컴플라이언스(GRC)의 김예지 북한 자문위원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이버 작전이 북한의 외화 확보 노력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거 사이버전을 핵무기, 미사일과 함께 '전능한 검'이라고 표현한 사실도 언급했다.
김 위원은 또 "오늘날 사이버전은 (북한에게) 핵무기와 미사일을 살 돈을 마련해 주는 무기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2024년 발표된 유엔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외화 수입의 절반가량은 악의적 사이버 활동을 통해 창출되며, 이렇게 확보한 자금 일부는 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쓰인다. 보고서는 북한 대량살상무기 개발 자금의 40%가 불법 사이버 공격에서 나온다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