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 비행의 마스코트로 ‘스누피’를 택하는 등 봉제 인형을 우주선에 가져가는 것은 하나의 관행처럼 굳어졌다. 과학이 캐릭터와 만나면서 대중과 과학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우주국(ESA)은 19일(현지시각) 피카츄 인형이 67일간 천 회 넘게 지구 주변 궤도를 공전했다고 발표했다. ⓒESA
유럽의 우주기구인 유럽우주국이 19일(현지시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포켓몬스터의 대표 캐릭터 피카츄 인형이 67일간 우주 궤도에 머물렀다고 발표했다. 오는 10월4일 시작하는 세계 우주 주간을 맞이해 유럽우주국이 일본의 포켓몬 컴퍼니와 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우주국은 피카츄 인형이 지난 2026년 4월11일부터 6월17일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며 지구 주변을 천 번 넘게 공전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우주비행사 소피 아드노의 과학 실험을 위한 '엡실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피카츄 인형이 우주선에 동승했다.
유럽우주국과 피카츄의 협업은 우주 비행에만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럽우주국 주요 시설과 박물관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의 과학관에서 우주와 포켓몬을 주제로 한 전시가 2027년 4월까지 이어진다. 포켓몬 컴퍼니 측에서도 자사의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GO'에 우주비행사 복장을 한 피카츄를 등장시켜 게임 유저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럽우주국은 이번 포켓몬 컴퍼니와의 협업을 두고 새로운 방식으로 우주과학을 대중에 전달하기 위함이라 밝혔다. 요제프 아슈바허 유럽우주국 사무총장은 "미래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유럽우주국의 핵심 임무"라면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우주에 대한 창의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우주 연구 기관이 캐릭터를 이용해 홍보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미국의 전설적 만화 피넛츠의 대표 캐릭터 '스누피'와 협업한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22년 11월 NASA의 달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의 오리온 탐사선에 스누피 인형이 떠있다. 스누피 인형은 우주선이 미세중력 상태에 진입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무중력 지표’ 구실을 했다. ⓒNASA
NASA와 스누피의 인연인 1969년 아폴로 10호의 달 탐사 프로젝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폴로 10호는 두 달 뒤 있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 우주선의 장비와 기동성을 시험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때 아폴로 10호는 착륙선이 달 표면을 5만 피트(약 15km) 이내로 스쳐 지나가도록(snoop around, 스눕 어라운드) 착륙 지점을 정찰해야했다. 이에 착안해 당시 아폴로 10호의 선장이던 미국의 우주비행사 토머스 스태퍼드가 달착륙선의 이름을 '스누피'로 지었다.
이후 스누피 캐릭터는 NASA의 우주비행 프로그램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2022년 11월엔 NASA의 달 착륙 프로그램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환으로 오리온 탐사선에도 스누피 인형이 동승했다. 이때 스누피 인형의 임무는 지구 중력권을 벗어났을 때 물체가 허공에 뜨는지를 알려주는 '무중력 지표'였다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인류 우주 비행 안전에 크게 기여한 직원에게 '실버 스누피 상'을 수여한다. 이 상은 항공 우주 업계에서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NASA
천 재질의 봉제인형이 우주선에 동승하는 건 우주비행의 오랜 전통이다. 1961년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 프로젝트에 인형을 지참한 것이 효시가 됐다. 봉제 인형은 우주선 내 민감한 기계 장치에 부딪혀도 파손을 일으키지 않아 우주 탐사 프로젝트의 '무중력 지표'로 줄곧 사용되어왔다. 작은 인형이 긴장감 넘치는 우주 공간에서 선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주 연구 기관이 유명한 캐릭터와 협업하는 것은 대중에게 과학을 쉽고 친숙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캐나다의 빅토리아 대학교 신경과학 연구자인 E. 폴 제어가 2014년 미국생리학회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그는 "어렵고 복잡하기만 할 것 같은 과학이 대중에게 전달되기 위해선 편안하게 느끼는 문화적 대상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중간 지대'로써 슈퍼 히어로나 캐릭터가 최적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