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20대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20대 소비자의 일반주점 결제 건수가 3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을 중시하는 절주 문화가 확산한 데다 고물가와 회식 문화 변화 등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주류 출고량이 27년 만에 300만㎘(킬로리터) 아래로 떨어졌다. 맥주와 소주 출고량은 2022년 이후 3년 연속 줄었고, 탁주(막걸리)는 5년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8월23일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98만8천㎘로 집계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주류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8일 NH농협은행이 카드 이용 개인고객 738만 명의 결제 정보 1억2700만 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해 상반기 일반주점 결제 건수는 2023년 상반기보다 34% 감소했다. 결제 금액도 같은 기간 30% 줄었다.
감소 폭은 20대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20대의 일반주점 결제 건수는 2023년 상반기보다 52% 감소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다른 연령층에서도 감소세가 나타났다. 같은 기간 30대는 35%, 40대는 40%, 50대는 24% 감소했다. 반면 60대 이상은 9% 증가했다.
전체 일반주점 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달라졌다. 20대 비중은 2023년 34%에서 올해 25%로 9%포인트 줄었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은 12%에서 19%로 확대됐다. 올해 상반기 술집에서 이뤄진 결제 5건 중 약 1건이 60대 이상 고객의 결제였던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술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여가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층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 층의 주점 이용 감소 배경으로는 절주 문화 확산이 꼽힌다. 건강과 자기관리를 중시하면서 의식적으로 술을 줄이거나 마시지 않는 이른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자발적 절주)’가 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술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새로운 여가 문화도 등장했다. 로이터는 지난 2월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음악과 춤을 즐기는 ‘술 없는 파티(sober rave)’가 젊은 층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술 대신 커피나 아이스티 등을 마시면서 파티를 즐기는 방식이다. 로이터는 이를 건강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글로벌 절주 흐름 가운데 하나로 분석했다.
이 같은 변화는 주류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 4월 미국 버번 시장의 침체를 다루면서 생활비 상승에 따른 가처분소득 감소와 함께 젊은 소비자의 건강에 대한 관심을 수요 부진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기존 주요 소비층인 베이비붐 세대를 대체해야 할 젊은 소비자들이 이전 세대만큼 술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주점 결제 감소를 곧바로 젊은 층의 음주 자체가 감소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카드 결제 자료는 주점 이용 추이를 보여줄 뿐 실제 음주율이나 음주량을 직접 측정한 통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20대뿐 아니라 30~50대에서도 주점 결제가 줄었다는 점에서 외식비 부담과 회식·2차 문화 변화 등 다른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글로벌 조사에서는 ‘Z세대(1997~2012년생)가 주류 소비 감소를 주도한다’는 기존 인식과 다른 결과도 나왔다.
주류시장 조사업체 IWSR이 지난 7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 15개 주요 주류시장에서 법적 음주 연령에 해당하는 Z세대 가운데 최근 6개월간 술을 마신 비율은 74%로 집계됐다. 3년 전 66%에서 8%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성인의 음주 참여율 76%와도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베이비붐(1946~1964년생) 세대의 음주 참여율은 71%로 전 세대 가운데 가장 낮았다. 3년 전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 는 81%, X세대(1965~1980년생)는 77%로 조사됐다.
음주량은 세대를 불문하고 감소하는 추세다. IWSR 조사에서 음주자들이 한 번 술을 마실 때 소비하는 양은 평균 3.9잔으로 2024년과 2025년의 4.4잔보다 줄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평균 2.6잔으로 가장 적었다.
IWSR은 특히 베이비붐 세대에서 예상보다 큰 폭의 감소가 나타난 점에 주목했다. 마르텐 로데베이크스 IWSR 사장은 “Z세대가 절주의 세대라는 이야기는 이제 명백하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Z세대가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가 ‘절주의 세대’로 불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Z세대(1997~2012년생)가 술을 완전히 외면하기보다 마시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WSR 조사에서는 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사교 모임 등 특정한 상황에서 술을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건강을 고려하면서도 필요한 자리에서는 술을 마시는 식이다.
이에 따라 최근 주류 소비 감소를 특정 세대의 ‘금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과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위축에 건강을 중시하는 생활방식, 회식 문화 변화, 음주량 조절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타난 20대의 일반주점 결제 급감도 이 같은 소비 변화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젊은 층이 늘어난 데다 고물가로 비싼 술자리와 잦은 회식을 피하고, 술을 마시더라도 횟수와 양을 조절하는 등 음주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