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고,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잡으면 공기는 계속 깨끗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산불과 폭염이다.
2026년 9월7일(현지시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트레비세보에서 한 소방관이 산불 피해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기상기구(WMO)는 유엔이 지정한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인 지난 7일(현지시각) ‘대기질 및 기후 회보(Air Quality and Climate Bulletin)’를 통해 산불과 폭염이 기후위기의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기후위기로 더욱 거세진 산불과 폭염이 세계 곳곳에서 대기질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산불은 숲만 파괴하지 않는다
2026년 8월2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서에서 산불이 1번 고속도로 방향으로 번지는 가운데 소방차가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WMO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산불이다. 산불 연기 안에는 폐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들어 있다. 몸속으로 들어온 산불 연기는 ‘산화 스트레스’를 일으켜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산불 연기에 노출되면 천식 발작이 늘고,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으로 인한 입원과 호흡기 치료제 사용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과 출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보고됐다.
문제는 산불 연기의 규모도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WMO가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산불 연기는 1990년대 이후 3배로 늘었다. 연구진은 산불 연기 노출이 2010~2018년 연평균 약 10만 명의 추가 사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했다. WMO는 실제 건강 피해가 이보다 더 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더 강해진 폭염, 더 짙어진 오존
2026년 8월13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여성이 양산으로 햇볕을 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산불이 미세먼지를 몰고 온다면, 폭염은 오존 오염을 부추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층권의 오존층은 태양의 유해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고마운 보호막이다. 하지만 사람이 숨 쉬는 지표면 가까이에서 만들어지는 오존은 사정이 정반대다. 호흡기와 심혈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대기오염물질이다. 기온 상승과 정체된 대기 상태, 강한 일사량은 지표면 오존의 생성을 촉진한다.
오존이 폐로 들어오면 폐 조직을 산화시켜 염증을 일으키고 혈액순환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심하면 심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서는 COPD로 숨지는 사람 5명 중 1명꼴로 장기간의 오존 노출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됐다.
눈 위에 내려앉은 ‘검은 먼지’, 지구를 더 달군다
2026년 9월1일 스위스 서부 휴양지 크랑몽타나 상공에서 촬영한 플렌 모르트 빙하가 녹고 있는 모습. 해발 2750m에 자리한 플렌 모르트 빙하는 스위스의 다른 빙하들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로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 PM2.5다. PM2.5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산업시설과 자동차, 가정 난방에서 나오지만 산불과 먼지폭풍에서도 발생한다. 크기가 워낙 작아 폐 깊숙한 곳은 물론 혈류까지 침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입자의 영향은 사람의 몸에서 끝나지 않고 기후까지 건드린다. 공기 중을 떠다니는 미세한 입자를 ‘에어로졸’이라고 한다. 에어로졸은 구름의 성질과 수명, 밝기를 바꾸면서 기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심지어 공기 중을 떠돌다 땅으로 내려온 뒤에도 역할이 끝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검은 그을음, ‘블랙카본’이다. 블랙카본이 새하얀 눈과 얼음 위에 내려앉으면 표면이 어두워진다. 흰옷보다 검은옷이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하는 것과 비슷하다. 눈과 얼음이 빛을 되돌려 보내는 능력이 떨어지고, 대신 더 많은 열을 흡수한다. 결과는 더 빨리 녹는다.
WMO는 대기를 타고 이동하는 미세플라스틱에도 주목했다. 플라스틱이 햇빛 등의 영향으로 잘게 쪼개져 만들어진 미세플라스틱은 육지와 바다뿐 아니라 대기에서도 발견된다.
한 지구시스템모델 시뮬레이션에서는 육지에 약 5100만톤, 해양에 약 2200만톤의 미세플라스틱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육지와 바다의 미세플라스틱이 다시 공기 중으로 날아올라 대기를 통해 이동하고 다른 지역에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뜨거워진 지구가 공기를 더럽히고, 더러워진 공기가 다시 지구를 데운다
2026년 9월6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주 반유아신에서 한 시민이 산불로 인한 연무로 뒤덮인 도로를 자전거와 함께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5년 전 지구 평균 지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보다 약 1.43℃ 높았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더 뜨겁고 건조해지면서 산불은 더욱 거세지고, 폭염은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