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7월 말 엔화 부양을 위해 외환 시장에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엔화 약세가 당시 수준으로 돌아왔다. 미국이 자국에 유리한 자금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개입할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됐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2026년 7월30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백악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통신=연합뉴스
14일 영국 언론 가디언을 포함한 외신을 종합하면 7월31일 엔화 부양 목적으로 미국이 수십억 달러 상당의 엔화를 매입했지만 엔화는 최근 다시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 정부가 자국에 이득을 가져오는 자금 흐름을 유지하려 추가 개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엔화는 지난 7월31일 1달러당 163엔 수준으로 떨어지며 1986년 이후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엔화를 대거 구매했다.
미국 정부가 엔화 부양에 개입한 것은 1998년이 마지막이다. 1997년 태국에서 발생해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외환위기 여파로 일본에서는 홋카이도탁쇼쿠은행·야마이치증권 등 대형 금융사의 연쇄 파산이 이뤄지며 극심한 금융 시스템 붕괴가 발생했다. 엔화는 1997년 말 1달러당 120~127엔대에서 1998년 6월 중순 달러당 147엔대까지 급격히 하락했고, 이에 미국은 엔화 방어에 나섰다.
28년만의 미국 개입이 이뤄진 지난 7월31일 이후 엔화는 1달러당 157엔 정도로 올랐다. 그러나 8월14일 기준 엔화는 다시 1달러당 159엔대로 진입하며 심리적 마지노선인 1달러당 160엔 선을 넘을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엔화 약세의 근본적 원인인 일본의 정부 부채 확대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일본 정부 부채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1.4% 늘어난 1342조 엔(1경2588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동시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감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세입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 경제는 미국·이란 전쟁으로 일본 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하고 있기에 엔화 가치는 더 약화했다. 일본은행은 지난 6월 이미 한 번 인플레이션 대처를 위해 기준 금리를 31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1.0%로 올렸다.
다만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엔화 부양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제 시장에서 일본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게 미국 경제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가디언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미국에 이익이 되는 자금 흐름 유지 시도"
일본 기준금리는 연 1.0%로 지난 6월 0.25% 인상한 다음에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각국 은행들은 이에 일본의 초저금리를 이용해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꾼 후 수익률이 높은 주식이나 채권, 특히 미국 기술주에 투자해 이자 차익과 환차익을 꾀하는 투자 전략인 '엔 캐리 트레이드'를 진행해 왔다.
가디언은 12일 "월스트리트의 금융사들이 수천억 달러를 인공지능(AI)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글로벌 자금 조달의 주요 수단인 엔 캐리 트레이드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더 큰 금리 인상을 감행하면 투자자들의 수익률과 엔화 차입 금리 간의 격차가 줄어들어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매도하고 엔화를 매입할 수 있다. 이러면 엔화 강세가 강화되고 더 많은 미국 자산 매도가 이뤄지는 순환이 생기며 순식간에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선택을 내리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 국채를 보유한 나라로 보유량은 약 1조1천억 달러(약 1567조 원)가 넘는다. 일본이 만일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하면 국채 금리가 올라가 미국 정부의 부채 이자 부담이 증가한다.
◆ 미국 재무부, 앞으로도 다시 엔화 부양을 위해 개입할 수도 있다
미국 재무부가 엔화 부양을 위해 다시 개입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미 2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필요하다면 엔화 가치를 강화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가타야마 사츠키 일본 재무상 역시 3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같은 발언을 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대출 제도를 활용해 일본 정부가 미국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 엔화를 매입하도록 허용했다. 그런데 이 대출 제도는 외국 정부가 빌릴 수 있는 자금 한도를 600억 달러(약 85조 원)로 설정해 뒀다.
베센트 장관은 지난 2일 엑스에서 해당 대출 제도의 한도를 없애거나 크게 늘려야 한다며 추가적 개입이 필요함을 암시했다. 만일 한도가 사라진다면 일본에게는 금리를 크게 인상하거나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선택지 외에도 엔화 가치를 안정시키는 방안이 생기게 된다.
개입의 필요성 가운데 또 하나로는 계속된 엔저가 아시아 전체에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베센트 장관은 5일 닛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엔화가 1998년에 달러 대비 절하돼 아시아 경제 위기를 심화시켰다"며 "지금도 한국 원화, 중국 위안화 등 많은 아시아 통화가 일본 엔화의 움직임을 따르고 있어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이 모든 통화가 함께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