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이제 '점심 한 끼 1만5천 원' 시대가 낯설지 않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는 밥 한 끼를 사 먹는 것조차 슬쩍 망설여진다.
월급이 넉넉하지 않은 사회초년생과 청년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커피 한 잔, 점심 한 끼,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 이어지다 보면 통장 잔고는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든다.
고물가시대 청년들의 고군분투. AI 이미지.
14일 국가데이터처의 '2026년 7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9.77(2020년=100)로 1년 전보다 2.8% 올랐다. 전월 상승률인 3.2%보다는 둔화했지만 외식과 밀접한 개인서비스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하며 전체 물가 상승률을 웃돌았다.
청년들에게 체감되는 부담은 더욱 크다. 2026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20원으로,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급은 약 216만 원 수준이다. 대학생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최근 소비지출행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월평균 지출액은 68만1천 원이다.
말 글대로 끼니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에 청년들은 힘을 합쳐 뭉치기 시작했다.
오늘도 '무지출' 도전… '거지방'의 등장
2026년 8월14일 현재 오픈톡방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많은 오픈톡방을 확인할 수 있다. ⓒ카카오톡
당근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거지방'을 검색하면 관련 모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거지들의 소통방', '거지 메뉴 추천 방' 등 이름도 직관적이다. 수백 명은 기본이고, 많게는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다.
이곳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무척 현실적이다. 한 이용자는 "점심에 국물을 남기고 밥을 말아서 저녁까지 해결했다"며 사진을 올리고, 또 다른 이용자는 "5만 원을 대출받아 삼겹살을 먹었다"며 자신의 소비 내역을 공유한다. "끝내 못 참고 먹고 싶은 메뉴를 점심으로 사 먹었다"는 글에는 "조금만 더 참지 그랬느냐"는 응원의 댓글이 달린다.
그렇다고 이곳이 단순한 '하소연을 나누는 공간'만은 아니다. 참여자들은 '오늘의 지출', '무지출 인증' 등을 올리며 하루 소비를 기록하고 서로 절약 방법을 알려준다.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방에 모여 서로의 식단을 감시하듯, 여기서는 통장 잔고를 지키기 위해 서로의 소비를 살핀다.
혼자라면 아무래도 참을성이 부족해지지만, 수백 명과 함께 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응원이 힘이 된다.
'같이 장 보실 분' 대용량의 벽을 허물다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소분모임'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해 놨다. ⓒ당근마켓
식재료를 함께 사서 나누는 '소분 모임'도 등장했다. 네이버 카페와 당근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용량 마트 식자재 소분 모임', '트레이더스·코스트코 소분해요' 같은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1~2인 가구에게 반가운 방식이다. 창고형 할인마트의 장점은 대용량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데 있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그 대용량이 곧 고민거리다. 싸기는 한데 다 먹기 전에 상할 것 같고, 냉동실에 넣어두자니 공간이 부족하다. 결국 할인 가격을 구경만 하다가 작은 포장 제품을 집어 들게 된다.
소분 모임은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한다. 여러 명이 대용량 제품을 함께 구입한 뒤 필요한 만큼 나눠 갖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미국산 냉동 우삼겹이 3.3kg에 4만7980원이라면 1kg당 약 1만4540원이다.
반면 일반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국내산 냉장 삼겹살은 2026년 여름 기준 1kg당 대체로 2만6천~3만1천 원 수준이다. 7월 중순 소매가격도 100g당 2887원, 1kg으로 환산하면 약 2만8870원이었다.
소포장이라고 꼭 저렴한 것도 아니다. 500g에 1만5천 원이라면 1kg당 3만원으로, 오히려 일반 삼겹살과 비슷한 가격이 된다. 결국 대용량을 함께 사고 소분하면 단위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절약 이상의 의미도 있다. 버려지는 식재료를 줄이고, 필요한 만큼만 소비할 수 있다.
혼자라서 못 샀던 '대용량의 벽'을 여럿이 모여 '지혜로운 소비'로 넘는 셈이다.
친구는 만나고 싶고, 돈은 없고… 그래서 '도시락 모임'
인스타그램 '대학생 도시락' 검색. ⓒ인스타그램
식비 부담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도시락 모임'도 눈길을 끈다.
2023년 경향신문이 보도한 사례를 보면 한 대학생은 동기 카카오톡방에서 공강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도시락 먹는 날'을 정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6~7명이 학교 안 카페 등에 모여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는 방식이다.
사실 대학생들에게 밥값은 단순히 음식값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카페로 이동하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약속이 이어진다. 즉 대학생 시절, 식비는 단순히 식비가 아니라 젊은 날 교우관계에 대한 비용 지출이기도 하다. 다만한 번의 만남에 1만5천 원에서 2만 원가량이 빠져나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기에 도시락 모임은 밥값을 아끼면서 친구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묘미다. 각자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펼쳐놓으면 비싼 식당도, 카페도 필요 없다. 집에 있는 반찬을 조금씩 싸 오고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교우 관계를 다질 수 있다.
다만 2026년 현재 '도시락 모임'과 관련된 온라인 모임 등은 많이 줄었고, 대학생 공동구매 채팅방 등으로 형태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