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강경 우파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가 에식스주 클랙턴 보궐선거에서 쓰레기통을 머리에 뒤집어쓴 ‘은하계 우주 전사’와 맞붙어 승리했다.
카운트 빈페이스(Count Binface) 런던시장 후보가 2024년 4월25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궁 인근 칼리지 그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가 2026년 7월17일 런던 남동부에서 열린 영국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CNN은 패라지가 13일 치러진 클랙턴 보궐선거에서 2만2239표(62.8%)를 얻어 다시 하원의원이 됐다고 보도했다. 패라지는 영국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으로, 반이민·반EU 노선을 앞세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운동을 이끈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의 주요 경쟁자는 코미디언 존 하비가 만든 풍자 캐릭터 카운트 빈페이스(Count Binface, '쓰레기통 얼굴 백작'의 뜻)였다. 쓰레기통을 뒤집어쓴 빈페이스도 무려 9455표(26.7%)를 얻었다.
8월14일 영국 동부 클랙턴 레저센터에서 클랙턴 보궐선거 개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개표 담당자들이 영국개혁당 후보 나이절 패라지와 카운트 빈페이스 등 각 후보의 표를 집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런데 이 선거, 어딘가 이상하다. 무려 34명이 출마해 투표용지는 약 90㎝까지 길어졌지만 노동당과 보수당 등 주요 정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패라지가 의원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다시 출마한 선거에 굳이 뛰어들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패라지는 이번 선거를 ‘국민 대 기득권’의 대결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기득권 쪽이 아예 출전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패라지와 군소 후보들, 그리고 쓰레기통을 쓴 우주 전사였다. 영국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번 선거를 ‘서커스’라고 부른 이유다.
카운트 빈페이스(Count Binface) 하원의회 후보가 8월14일 영국 잉글랜드 클랙턴온시의 레저센터에서 열린 클랙턴 보궐선거 개표 현장에서 취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더구나 이 선거는 패라지 자신이 만든 선거다. 클랙턴 하원의원이었던 패라지는 자신과 영국개혁당의 자금 문제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신고되지 않은 500만 파운드(약 96억 원) 규모의 금전적 지원을 둘러싼 의혹이 핵심이었다. 패라지는 잘못이 없다고 부인하며 유권자에게 판단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 결과는 재선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약 25만 파운드(약 4억8천만 원)의 선거 비용이 들었고, 패라지가 의원직을 되찾으면서 의회 윤리기준위원회의 조사도 다시 시작된다는 점이다. 문제가 확인되면 또다시 징계 절차나 보궐선거가 이어질 수도 있다. 의석은 되찾았지만 논란까지 되찾은 셈이다.
정치적 상황도 녹록지 않다.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의 오른쪽에서는 전 영국개혁당 의원 루퍼트 로가 만든 리스토어 브리튼(Restore Britain)이 지지층을 파고들고 있다. 더 강경한 세력이 오른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상황인 셈이다. 한때 전국 여론조사에서 앞서며 승승장구했던 영국개혁당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에식스주에서 8월14일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의 사퇴로 치러진 클랙턴 보궐선거에서 패라지가 당선된 뒤 카운트 빈페이스(Count Binface)가 다른 후보들과 함께 서서 손짓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서 이번 선거의 아이러니는 분명하다. CNN의 표현을 빌리면, 패라지가 이번 선거에서 증명한 것은 결국 ‘쓰레기통을 뒤집어쓴 은하계 우주 전사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선거에 단골로 출마했던 빈페이스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내 세금은 깎고 다른 사람들의 세금은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는가 하면, 가수 아델을 국유화하고 유명인들이 직접 쓰거나 ‘쓴 척하는’ 범죄 추리소설에 횡재세를 부과하겠다고 황당한 공약을 내세웠다.
물론, 영국에서는 이런 후보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500파운드(약 96만 원)의 보증금과 10명의 추천인만 있으면 의회 선거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