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동물의 몸뿐 아니라 뇌와 행동 방식까지 흔드는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먹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방향 감각을 잃고, 둥지를 떠나거나 개체 간 경쟁 행동이 증가하는 등 이상 행동이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체코 프라하 동물원의 북극곰들이 2026년 7월30일(현지시각) 폭염을 식히기 위해 사육장에 놓인 얼음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체코 기상당국은 또 한 차례의 극심한 폭염을 예보하며 7월30일 기온이 35도를 넘고, 일부 지역은 7월31일 40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EPA/연합뉴스
일본에서는 폭염이 동물원 동물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3일(현지시각) 일본 도쿄 타마동물원에서 암사자 3마리가 잇따라 폐사했다고 외신들은 일제히 전했다. 부검 과정에서 심한 탈수와 다발성 장기부전이 확인됐지만 정확한 사인은 조사 중이다. 동물원 측은 기록적인 폭염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가축 피해도 반복되고 있다. 닭은 땀샘이 거의 없어 헐떡이는 호흡으로 열을 배출하고, 돼지는 땀을 통한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해 물이나 진흙에 몸을 담가 열을 식힌다. 기온이 급격히 오르는 극심한 폭염에서는 이런 생리적 대응만으로 체온을 유지하기 어려워 집단 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전국에서 가축 폐사가 늘고 있는 가운데 7월29일 세종시 전의면 신흥농장에서 폭염에 취약한 돼지를 위해 에어컨과 함께 선풍기가 가동되고 있다. 농장주는 폭염이 지속될수록 냉방설비를 가동하는 데 드는 전기세 등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연합뉴스
폭염의 영향은 동물의 행동과 인지 능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022년 4월 국제학술지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Global Change Biology)’에 발표된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연구는 뚱뚱한 꿀벌처럼 생긴 뒤영벌(범블비)가 32도에 노출되면 학습 능력과 기억 유지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뒤영벌은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는 중요한 곤충이다. 몸집이 크고 털이 많아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이 좋아 이른 봄이나 서늘한 지역에서도 활동하며 꽃가루받이를 담당한다.
2026년 8월6일 프랑스 북동부 불뢰즈에서 카르니올란 꿀벌 무리가 나뭇가지에 모여 있다. 가뭄으로 메마른 들판 속에서도 벌들이 먹이를 찾는 꽃밭이 남아 있다. ⓒAFP/연합뉴스
물속 생명체 역시 영향을 받는다. 2023년 8월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Global Change Bi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 호주 제임스쿡대학교 연구진은 산호초에 서식하는 열대어들을 대상으로 고수온 환경을 실험한 결과, 물 온도가 높아질수록 학습과 기억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확인했다. 높은 수온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행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열대어는 산호초 생태계를 지탱하는 숨은 일꾼이다. 조류를 조절해 산호가 살아갈 공간을 만들고, 먹이사슬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호주에서는 폭염이 닥칠 때마다 박쥐 구조 요청이 급증한다. 초음파로 주변을 탐색하며 살아가는 박쥐도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는 버티기 어렵다. 고온 스트레스와 탈수로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서 비행 능력이 약해지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지거나 집단 폐사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 박쥐들이 큰 피해를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6년 1월 호주 남호주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큰박쥐류에 속하는 과일박쥐 플라잉폭스 2500마리 이상이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플라잉폭스는 밤마다 꽃과 열매를 찾아 이동하며 꽃가루를 옮기는 등 숲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6년 6월 20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반다에서 폭염 속 새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새들도 폭염을 피하지 못한다. 2022년 국제학술지 ‘애니멀 비헤이비어(Animal Behaviour)’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호주 서부 까치가 고온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새들이 먹이와 연결된 정보를 기억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더위 속에서 둔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6월21일 로이터통신은 벨기에 나뮈르 인근 야생동물 구조센터가 최근 며칠 동안 폭염으로 탈진한 동물 약 150마리를 구조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어린 새들의 피해가 컸다. 지붕 아래 둥지를 튼 새끼 새들은 폭염으로 둥지 내부 온도가 50~60도까지 치솟자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둥지 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례가 잇따랐다.
폭염은 동물의 행동 방식도 바꿀 수 있다. 2023년 5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오브 더 토털 엔바이런먼트(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기온 상승과 가뭄이 초식 포유류의 먹이 경쟁을 심화시켜 개체 간 충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탈리아 연구진은 산양과 비슷한 초식동물인 아펜니노 샤무아를 분석한 결과,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 개체 간 경쟁 행동이 증가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먹이 자원을 둘러싼 동물 간 갈등이 더 잦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