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채 두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인공지능(AI) 서버용 핵심 부품 시장에서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5월 1조5570억 원 규모의 실리콘 커패시터 수주에 이어, 6월 4540억 원 규모의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AI 부품 삼각편대(MLCC, 실리콘 커패시터, 패키지기판)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사 장덕현 대표이사 사장은 이 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AI를 넘어 우주항공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다.
삼성전기가 최근 인공지능(AI) 서버용 핵심 부품 시장에서 연이어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기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글로벌 대형기업과 4540억 원 규모의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커패시터는 전기를 일시적으로 저장했다가 반도체가 필요로 할 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댐 역할과, 미세한 전기 노이즈를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동시에 하는 전자부품이다.
◆ MLCC 공급 부족 심화 : 삼성전기에는 호재
이번 MLCC 수주는 장기공급계약(LTA)으로 체결됐다. LTA는 보통 고객사가 구매하려는 제품의 공급 부족이나 가격 상승을 예상할 때 물량을 선점하고자 맺는다. 고성능 MLCC는 AI 서버 구축 수요 급증으로 품귀 현상이 일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수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고의영 IM증권 연구원은 1일 보고서에서 삼성전기의 계약을 두고 "하이퍼스케일러가 MLCC 공급 리스크를 인지해 LTA를 요구한 사례로 볼 수 있다"며 "현재 다른 MLCC 기종의 추가 공급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성능 MLCC로 생산이 집중되면서 범용 MLCC의 수익성이 덩달아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번 계약이 단순 수주에 그치지 않고 삼성전기의 실적을 전반적으로 견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6월30일 "고성능 MLCC의 수요 증가는 범용 MLCC 생산능력(캐파) 잠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MLCC의 공급량이 줄며 가격이 더욱 급격히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HBM 생산 확대가 범용 메모리 반도체 공급 감소와 가격 인상을 이끈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고성능 MLCC 품귀 현상이 2027년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만의 전자 산업 전문 미디어 디지타임스는 최근 보도에서 이 같은 예상을 제시하면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최근 보고서에서 MLCC가 AI 서버 원가 구성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 수요가 2030년까지 4.3배 폭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 실리콘 커패시터도 대형 공급계약
실리콘 커패시터 시장에서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5월 글로벌 대형기업과 10억3천만 달러(약 1조5570억 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맺으면서다.
이와 관련 장덕현 사장은 2024년 1월 신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실리콘 커패시터 사업을 적극 확장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2년 만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온 것이다.
실리콘 커패시터는 실리콘 웨이퍼 기반 반도체 공정으로 제조돼 두께가 매우 얇고 고밀도 집적화가 가능하다. 또 MLCC보다 저항이 100배 이상 낮아 신호전달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내열성이 우수한 장점이 있다. 다만 MLCC 역시 실리콘 커패시터에 견줘 기술적 성숙도와 단가, 대량 생산 및 공급 가능성 등에서 장점을 보인다.
업계에서는 MLCC와 실리콘 커패시터가 대체제가 아닌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본다. 제조 방식과 특성이 다른 데다 AI 반도체처럼 복잡하고 전력 소모가 큰 기기는 두 부품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 AI 부품 삼각편대 : 삼성전기의 경쟁력
삼성전기는 AI용 커패시터 분야에서 종합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MLCC와 실리콘 커패시터, 패키지기판을 모두 공급할 수 있어서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객사와 협력할 수 있는 것도 독보적인 장점으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김원기 삼성전기 실리콘 캐패시터 개발 그룹장은 6월11일 진행된 '실리콘 커패시터 기술설명회'에서 이 같은 점을 삼성전기의 경쟁력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김 그룹장은 "고객사는 MLCC와 실리콘 캐패시터 중 어떤 걸 쓰는 게 좋을지, 실리콘 커패시터를 반도체 기판 내부와 외부 중 어디에 탑재하는 것이 나을지 협의해야 하는데, 실리콘 커패시터만 하는 회사는 이러한 논의가 불가능하다"면서 "이게 바로 삼성전기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같은 평가가 나온다. 김민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5월21일 보고서에서 "MLCC, 실리콘 커패시터 기술력을 확보한 점이 다른 기판 업체와 차별화 포인트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의영 IM증권 연구원도 같은 날 보고서에서 "AI 서버의 전력 전달체계와 패키징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전력, 패키징 솔루션을 통합 제공할 수 있는 삼성전기의 가치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 우주항공 분야 저궤도 위성 시장 노린다
장덕현 사장은 AI 부품 시장에서 형성한 주도권을 기반으로 우주항공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노리고 있다.
우주항공용 MLCC, 실리콘 커패시터는 방사선, 급격한 온도 변화, 진동 등 극한의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문제가 생겨도 빠르게 수리·교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높은 신뢰성과 내구성이 요구된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기가 AI 서버 등 높은 수준의 품질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쌓은 부품 공급 경험이 우주항공 시장에서 강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기는 MLCC를 이미 우주항공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우주항공 MLCC 시장은 크게 저궤도 위성용과 위성에서 정보를 받아 중계하는 지상 단말기용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삼성전기는 지상 단말기용 MLCC를 공급한다.
장덕현 사장은 저궤도 위성용 커패시터 시장에도 적극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향후 고도 2천km 이하 저궤도 위성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배성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의 4월2일 우주항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활성 위성 약 1만2천 기를 보유하고 있고, 115만 기의 위성 발사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신청 물량 가운데 저궤도 위성의 비율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재 활성 위성 중 저궤도 위성의 비율을 감안하면 대략 90% 내외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만 100만 기의 저궤도 위성이 추가될 예정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저궤도 위성은 수명이 5년 이하로 짧아 반복적 발사가 이뤄진다.
삼성전기가 저궤도 위성 부품 공급망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경우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지속적 매출 발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