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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 지정 제도’를 개선해 동일인을 사람(자연인)이 아닌 법인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재계와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핵심은 이 제도 도입 이후 4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바뀌어 제도가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허프 생각] 대기업집단 '총수'로 법인 지정하자는 재계 : 쿠팡 사례 보고도 그런 말 나오나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된 김범석 쿠팡Inc 의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대기업 동일인 지정 제도는 1986년(시행은 1987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대기업집단이 경영권 세습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는 소유 집중과 문어발식 기업 확장 등을 규제할 필요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대기업집단의 실질 지배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해 지분 및 경영권 편법 승계,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등 친인척 특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만 특정 개인이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지 않거나 기업집단을 누가 지배하는지 불분명한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기도 하는 등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해 왔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2021년 쿠팡 동일인 지정 관련해서 논란이 되자 2024년 내국인이 아닌, 법인이나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기준을 구체화해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2026년 5월1일자로 발표된 공정위 대기업집단 지정현황을 보면, 총 102개 기업집단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이 중 법인이 동일인인 곳은 12개다. 

◆ 기업 현실 달라졌다 vs 사익편취 감독 수단 사라진다

재계는 동일인 제도 개선을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지난해 11월 공정위에 동일인 제도를 포함한 24개 제도 개선 과제를 제출했다. 일부 학계와 연구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내왔고, 지난달 김범석 쿠팡Inc 의장 동일인 지정 이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주장의 핵심은 이 제도가 자연인 총수 한 사람이 기업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 만들어진 제도로, 지금은 기업을 둘러싼 여건과 현실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지주회사와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되는 등 지배구조가 개선돼, 자연인 동일인 지정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상황이 됐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이 제도가 특정인에게 과도한 법적·행정적 책임을 부과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제도라는 것이다. 

반면 제도 유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을 때 애초 제도 도입의 근본 취지이던 사익편취 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사익편취는 동일인의 친인척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집단은 오너 일가 개인회사에 대한 감시망이 사라지게 된다. 지배력을 가진 오너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명단과 이들의 지분 보유 현황, 자금거래 등 지정자료 제출 의무도 없어진다. 

특히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오너가 대표이사나 사내이사로 등기하지 않고 회장 등의 직책만을 유지한 채 막후에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워지며, 이를 문제삼는다 해도 법적 책임을 지우기도 어렵게 된다. 즉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진 오너를 제도권 내에서 감독하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이번에 쿠팡의 동일인이 된 김범석 의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김 의장이 일찌감치 동일인으로 지정됐다면 그의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이 대중의 눈을 속인 채 쿠팡의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면서 1백억 원이 넘는 보수를 챙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동일인 제도 근본 취지 유지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인 역시 사람이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 낸 제도라는 점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제도가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 의사결정의 주체는 법인이 아니라 사람(자연인)이다. 

실질 지배자가 있는 기업의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법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애초 ‘법인 뒤의 사람’을 포착하겠다는 동일인 제도의 근본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규제의 방향은 법인이라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을 향해야 한다. 

요컨대 지분 소유를 기반으로 사실상의 지배력을 가진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제도는 유지돼야 한다. 

과도한 법적·행정적 책임과 잠재적인 범죄자 낙인을 탓하기 전에 경영을 잘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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