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병 전국은행연합회장의 임기는 올해 11월30일까지다. 통상 임기 만료 2~3개월 전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꾸리는 관행을 감안하면 차기 회장 선임 작업은 9월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기할만한 점은 아직 임기가 다섯 달이나 남은 상황에서, 벌써 하마평이 무성하다는 것이다.
후보군이 일찍 거론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신금융협회와 한국화재보험협회, 보험연구원 등 금융권 유관기관 수장 인선이 상반기에 잇따라 마무리되면서 시장의 시선이 '마지막 남은 자리'인 은행연합회장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9월 회추위 구성 가능성을 역산하면 슬슬 후보군의 윤곽이 드러날 시점이기도 하다.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왼쪽)과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 ⓒ허프포스트코리아
◆ 지주 회장 넘어 은행장 인선까지 겨눈 금융당국의 칼끝, 차기 회장이 맞이할 환경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이 강해지면서 차기 은행연합회장이 맞이할 환경 역시 녹록치 않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은행권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등 금융사고의 뿌리를 경색된 이사회와 금융지주 회장의 ‘참호 구축’ 등 '지배구조' 문제에서 찾아왔다.
주목할 점은 이 칼끝이 지주 회장뿐 아니라 은행장 인선까지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배구조 개편안이 회장뿐 아니라 각 은행장 선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을 보였다.
이 원장이 올해 2월 은행권을 향해 "먼저 지배구조 혁신에 과감히 나서 달라"고 주문한 자리 역시 은행연합회관이었다는 것도 차기 회장이 떠안을 짐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업권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편 드라이브와 마주 앉아야 하는 자리인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차기 은행연합회장 인선의 쟁점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십수 년째 반복돼 온 '민·관' 구도와, 올해 새로 불거진 'KB 편중' 논란이다.
◆ 당국 압박에 중요해지는 가교 역할, 다시 떠오르는 '관료 필요성'
은행연합회장은 은행권과 금융당국을 잇는 가교다. 그래서 과거에는 정책·당국과의 소통에 강한 관료 출신이 선호됐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의 흐름을 보면 민간 인사 쪽으로 기울어 있다. 12대 회장인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 13대 회장인 김태영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 그리고 현 은행연합회장(15대)인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모두 민간 금융그룹 출신이다. 14대 김광수 전 회장은 관료출신이지만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인물이라 ‘절충형 인사’로 분류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편 국면이 '관'의 무게를 다시 키우는 변수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 생산적 금융 확대 같은 정책 현안에 더해 당국이 지배구조까지 직접 손대는 상황 속에서 은행업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동시에 정부와 정책을 조율할 '대관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 여신협회·화보협회 모두 한 금융그룹 출신, KB맨 전성시대 열리나
올해 더 첨예한 변수로 꼽히는 것은 바로 금융협회 회장단의 'KB 쏠림' 현상이다. 올해 여신금융협회장에 이동철 전 KB금융 부회장이, 한국화재보험협회 이사장에 김기환 전 KB손해보험 대표가 잇따라 선임되며 'KB맨 전성시대'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지금까지 KB금융그룹 출신 인사가 은행연합회장을 맡은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10여 년 동안 우리·씨티·농협·신한 등의 금융그룹은 은행연합회장을 배출했지만, KB금융그룹 출신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선례를 통한 ‘명분론’과 한 금융그룹 출신들이 금융협회장 자리를 독점하는 것에 대한 ‘편중’ 논란이 동시에 제기되는 모양새다.
◆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관료’ 출신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KB금융지주 최초 3연임 회장으로 9년 동안 그룹을 이끌었고,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리딩금융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 인지도와 경력 측면에서 가장 앞서있는, '대세론'의 중심이다.
윤 전 회장은 'KB금융지주 출신 연합회장은 없었다'는 명분론의 최대 수혜자이자, 동시에 'KB 편중'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후보이기도 하다. 2023년 인선 때도 후보로 거론됐다가 직접 고사한 전력이 있어, 이번엔 후보로 나설지도 관전 포인트다.
허인 전 KB금융지주 부회장도 후보로 거론된다. 첫 장기신용은행 출신 국민은행장으로, 사상 첫 3연임을 거쳐 신한을 제치고 리딩뱅크를 탈환한 인물로, 기관영업에 강한 ‘영업 전문가’이자 KB스타뱅킹 개편·리브M 등 디지털 전환을 주도했다.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를 비껴간 내부통제 이력도 허 전 부회장의 강점이다. 다만 같은 KB 출신인 윤종규 전 회장과 동시에 거론되는 상황에서 회장이 아닌 부회장에서 멈춘 경력 탓에 상징성에서 밀린다는 한계가 있다.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은 '관'을 대표하는 카드다. 행정고시 27회 출신 정통 경제관료로 청와대 경제수석,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거쳤다. 정부 정책과 금융 현안에 대한 이해도, 국제금융 네트워크가 윤 전 행장의 강점이다. IBK 재임 중 사상 최대 실적(재임 당시 기준)을 낸 경영 성과도 보유하고 있다.
취임 당시 노조가 '낙하산'으로 규정해 한 달 가까이 출근을 저지당한 전력은 꼬리표로 남아 있지만, 그 반대를 뚫고 3년 임기를 마친 뒤 오히려 노조에게 인정받은 일화가 그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윤 행장이 기업은행을 떠나는 이임식에서 "윤 행장이 느끼기에 도가 지나친 요구도 많이 해 미안하다"면서도 "윤종원 행장은 IBK의 가장 큰 어른이었으며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 고마움을 되돌려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고별사를 했다.
◆ '균형 카드' 박종복, KB금융과 관료 어느쪽에서도 자유롭다
박종복 전 SC제일은행장은 어느 축에도 묶이지 않는 중립지대에 있다.
박 전 행장은 SC제일은행 첫 한국인 행장으로, 2015년 취임 첫해 적자(2858억원)를 이듬해 흑자로 돌려세웠다. 4연임에 성공해 10년 동안 SC제일은행을 지킨, 국내 최장수 은행장이라는 명성도 갖고 있다.
특정 금융그룹·관료 색채가 옅어 'KB 편중'과 '민관' 어느 논란에서도 자유로운 균형 카드라는 점이 박 전 행장의 차별점이다. 다만 외국계 은행 출신이라는 점에서 5대 지주·대형 시중은행을 아우르는 대표성 측면에서 약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