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총선에서 대패했다. 이로써 16년 권력이 종지부를 찍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헝가리 총선에 공개 지원에 나서기도 했으나 유권자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 등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충돌해온 유럽연합(EU)에게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 내 친러 성향을 보여왔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12일(현지시각) 치러진 총선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있다다. ⓒ로이터/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치러진 총선에서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여당 '피데스'는 전체 199석 가운데 55석 확보에 그쳤고, 페테르 머저르 대표가 이끄는 야당 '티서'는 138석을 확보하며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오후 9시께 기자회견을 열고 "고통스러운 결과지만 앞으로는 야당으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오르반 총리는 2010년부터 16년간 집권하며 헌법과 사법부, 언론, 선거제도 등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편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해왔다. 그는 거침없는 물가 상승에 따른 헝가리 경제 악화 속에 결국 패배의 쓴 잔을 마시게 됐다.
오르반 총리는 집권 뒤 유럽연합 가입국 지위를 활용해 우크라이나 지원 등 주요 사안에서 공동 대응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친러 성향을 보여왔다.
그는 일찍이 1989년 6월16일 26세 청년 운동가로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웅광장에서 소련군 철수와 자유선거를 요구하는 연설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20년 넘게 오르반 체제의 핵심 인사로 활동했던 페테르 머저르 총리 당선자는 오르반 정부의 부패에 반발해 결별을 선언한 뒤 2024년 신생 정당인 티서당을 창당,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2025년 11월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헝가리 현지에서 선거 유세 단상에 올라 오르반 총리 지지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AP/연합뉴스
인구 950만 명 안팎의 헝가리 총선에 전세계 이목이 쏠린 것은 오르반 총리가 유럽연합과 미국,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보수 진영은 오랫동안 오르반 총리를 지지해왔다. 오르반은 반이민 정책을 앞세워 글로벌 우파 진영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잡아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7일 JD 밴스 부통령을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보내 지원 유세에 나서게 하는 등 오르반 총리에 강한 지지를 보냈다.
오르반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이 추진한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 중단에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2023년에는 900억 유로(약 156조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대출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유럽연합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오르반 총리의 재집권을 지지해 온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에게 큰 타격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유럽연합 내 다른 유럽 국가들은 그의 패배를 반겼다.
야당 승리 소식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헝가리는 유럽을 선택했다"며 "한 나라가 유럽으로의 길을 되찾았다"고 환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유럽 모든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추구해 왔다"며 "헝가리와의 협력을 진전시킬 준비가 돼 있다"며 "양국의 이익과 유럽의 평화·안보·안정을 위해 건설적인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