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이 '역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풀어낼 군사적 수단(지상군 투입 등)이 없으니 거꾸로 미군이 다시 한번 해협을 봉쇄하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글로벌 공급망이 끊기고 국제유가 인상만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비극적 전쟁의 '희극적 장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FP=연합뉴스
중동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미국 중부사령부는 12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포고령에 따라 미국 동부시각으로 13일 오전 10시(한국시각 13일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해상교통에 대한 봉쇄조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란전쟁 첫 종전협상이 11~12일 결렬된 가운데 군사적 압박수준을 최대로 높이는 것이라는 해석을 일각에서 내놓고 있다.
이란이 자국산 원유 수출과 해협 통행료를 통해 전쟁 자금을 확보해 온 점에 주목해 돈줄을 죄려한다는 것이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란 항구 외의 항구를 출발지나 목적지로 하는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자유롭게 통행하는 것은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 이외의 제3국을 오가는 선박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는 두려움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 불확실하다.
더구나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미국의 해상봉쇄에 맞서 강력한 군사적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민간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자유롭게 통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혁명수비대 해군사령부는 12일 "호르무즈 해협의 모든 선박의 통행은 이란 군 당국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다"며 "적들이 단 한 번이라도 오판한다면 호르무즈 해협은 그들을 집어삼킬 죽음의 소용돌이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고 이란매체 세파뉴스가 전했다.
미국이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두고 맞불작전을 펴면서 애먼 국제유가와 공급망 마비 사태만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 경고에 국제유가는 세자리수로 다시 치솟게 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국제유가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한국시각 13일 오전 9시12분 기준 전장(10일) 종가보다 8.7% 뛴 배럴당 103.44달러를 나타냈다.
또다른 국제유가 지표인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같은 시각 104.93달러로 전장보다 약 8.7%가 급등했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과 이란 사이 봉쇄공방으로 막히면서 국제유가가 요동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안보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미군을 통해 지상전을 벌이기는 부담스러우니 해상봉쇄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모나 야쿠안 중동프로그램 국장은 블룸버그와 나눈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이번 해협 봉쇄카드는 상당히 야심차게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글로벌 원유 공급문제에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고 말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도 최근 리포트에서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조치는 이란의 석유 수출능력을 제한하는 목적이지만, 페르시아만 산유국의 수출도 억제하게 된다"며 "이는 현재 글로벌 원유시장이 겪는 공급차질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고 바라봤다.
글로벌 국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해상봉쇄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은 미국의 호르무즈 '역봉쇄' 계획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국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은 통행료 부과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며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합을 구성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이번 이란 전쟁을 통해 미국의 동맹관계에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전쟁이 미국을 약화시키는 4가지 방식'이라는 사설에서 이란전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이란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 △미국의 군사력 약화 △동맹관계의 균열 △미국의 도덕적 권위 실추 등를 초래했다고 짚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다니엘 바이만은 "이란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가장 큰 장기적 피해는 동맹관계의 파탄이 초래됐다는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