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리스크가 장기화하면서 석유화학 공급망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이 이어지면서 업계 전반에서는 ‘플라스틱 줄이기’가 생존 전략이 됐다.
이에 식음료업계는 ESG를 전면에 내세우며 포장재에 재생 플라스틱을 확대 적용하고 있고, 정부 역시 생활 필수품인 종량제봉투 생산 차질 우려가 커지자 재생 플라스틱 기반 대체재 도입을 검토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결과적으로 플라스틱 사용 감축은 친환경이라는 명분과 원가 절감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키며 ‘일석이조’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재활용 페트를 활용한 제품 사진. ⓒ롯데칠성음료
9일 식음료업계에 따르면 재생 플라스틱을 활용해 제품 용기를 바꾸거나 포장재 중량과 두께를 줄이는 등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를 낮추는 업계가 많아지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이번 달부터 펩시 제로슈거 라임 500ml, 아이시스 500ml, 새로 640ml 등 주요 페트 제품 3종에 재생 플라스틱 원료 100%를 적용한 용기를 도입했다. 이 용기를 사용하면 연간 4200톤까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트레비 제품에는 재생 플라스틱 10%를 적용한 수축 라벨을 도입해 추가적으로 16톤 규모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감축했다.
다른 식품 기업들도 유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동원F&B는 참치액과 식용유 등 주요 제품군에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인 자체 개발 용기를 적용했다. 기존보다 원료 투입량을 낮춰 경량화한 용기로, 연간 14톤의 플라스틱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원자재 가격 역전 현상도 자리하고 있다. 최근 중국산 신재 페트 가격은 톤당 1800달러대까지 상승한 반면, 국내 재생 페트 가격은 톤당 1700달러 수준에 머물며 재생 원료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간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잇따라 친환경 포장을 확대하는 가운데, 정부도 공급망 안정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중동 리스크 장기화로 종량제봉투 생산에 차질 우려가 커지자 재생 플라스틱 활용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현장 점검에 나섰다. 생활 필수품인 종량제봉투의 원료인 PE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산업 전반의 대응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생원료 투입 확대를 위해 생산 설비 개선 가능성까지 직접 점검하고 있다. 일부 생산 현장에서는 재생원료 비중을 높이기 위한 설비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부는 설비 사양과 제작 가능 물량, 소요 기간 등을 확인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지방정부 간 물량 조정과 여유 생산업체 연계를 통해 단기 수급 안정도 병행 관리하고 있다.
결국 ‘탈플라스틱 전환’이라는 흐름은 단순한 ESG 트렌드를 넘어, 지정학적 리스크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맞물리며 촉발된 변화로 해석된다. 친환경 포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비용 관리와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 모두 공통된 방향 아래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