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원을 웃도는 고가 단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래미안아이파크’에서 커뮤니티 시설 이용을 둘러싼 임대세대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커뮤니티 시설은 일반적으로 헬스장, 북카페, 공연장, 회의실, 키즈존 등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취미 활동이나 모임, 교육 등을 위해 함께 이용하는 공용 공간을 뜻한다.
아파트 소유가 가르는 대한민국 계급. 인공지능 이미지.
지난 7일 파이낸셜뉴스는 해당 단지 생활지원센터가 오는 21일 커뮤니티센터 개장을 앞두고 공고한 안면인식 등록 안내문에 ‘SH 임대세대는 제외’라고 명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일부 분양세대 측은 이용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매체에 “임대세대에 관리비를 n분의 1로 청구했다가 추후 내기 싫다고 하면 사실상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동주택관리법상 관리비는 공용부분 유지·관리 비용으로, 납부 여부와 별개로 모든 세대는 공용시설을 공평하게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 전기요금도 세대마다 사용량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덜 냈으니 전기도 덜 쓰라’고 하지는 않는 것도 이때문이다. 만약 특정 세대가 관리비 납부를 거부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해당 세대에 법적으로 묻는 것이 맞다. 이용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아파트 단지 내 차별을 두고 일부에서는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혼합주택단지에서 ‘임차인’에 대한 차별은 금지돼 있지만 준칙상 ‘임차인’이나 ‘사용자’의 정의에 임대주택 거주자가 명확히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같은 단지 안에서 같은 시설을 마주하고,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는 주민을 법 문구의 틈새를 이용해 배제하려는 태도야말로 이 논란의 본질을 보여준다.
▲현대판 新계급주의, 아파트 세대 차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파트들의 모습. ⓒ연합뉴스
임대세대에 대한 차별은 이제 단순한 불편이나 갈등의 수준을 넘어, 현대판 계급 구분을 연상케 할 정도로 구조화돼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만 해도 총 1만2천 세대 가운데 1046세대가 임대주택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1천 세대를 넘는 하나의 대단지와 다름없는 규모다. 그럼에도 같은 단지 안에서 임대세대는 종종 ‘같은 주민’이 아니라 ‘구분돼야 할 집단’처럼 취급된다.
실제로 일선 부동산 현장에서는 조합원 세대, 일반분양 세대, 임대 세대가 한 단지 안에 섞여 있는 ‘소셜믹스’ 구조임에도, 도면이나 내부 안내상 임대 세대가 별도 색으로 표시돼 일반 세대와 구분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 긋기가 이미 일상화돼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구분은 물리적인 공간 배치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서울에서 2005년 이후 정비사업을 추진한 일부 단지들은 임대동 입구를 따로 만들거나, 같은 단지 안에서도 동선을 분리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푸르지오2차, 성북구 e편한세상보문·길음뉴타운8단지 등은 임대동과 일반 분양동의 출입문을 분리해 운영해온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같은 동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경계는 존재했다. 서울 마포구 메세나폴리스(합정1구역 재개발)는 한 동 안에 임대와 일반 세대가 함께 배치돼 있지만,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이 따로 운영됐고, 임대 가구가 이용하는 비상계단에서는 상층부 일반 세대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이 같은 차별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도 여파를 끼친다. 경기의 한 주공아파트에서는 한 아이가 엘리베이터 층 버튼을 누르려 하자, 보호자가 ‘여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만지지 마’라며 손을 쳤다는 일화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자가 아파트에 사는 학생이 임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을 놀리다 주먹다짐으로 번진 사례도 있었다. 2015년 경북 안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신입생 예비소집 당시 임대 아파트 거주 학생과 분양 아파트 거주 학생을 따로 분류했다가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정말로 임대주택은 아파트 가격을 낮출까?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개포주공3단지) 입구에 위치한 임대동 . 최고 33층으로 지어진 일반동과 달리 임대동은 층수가 낮고, 짙은 색으로 도색돼 있다. ⓒ네이버 로드뷰
그렇다면 왜 이런 임대세대 차별은 유독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쉽게, 그리고 빠르게 굳어졌을까?
이 중심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있다. 임대세대와 분양세대가 섞여 있는 ‘소셜믹스’라고 해도 의사결정 구조는 대체로 분양세대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동주택관리법상 임대세대는 관리비를 함께 부담하면서도 입주자대표회의 참여나 영향력 행사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비용은 함께 내지만, 규칙은 남이 정하는 구조인 셈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단순한 행정적 불균형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쪽이 임대세대를 ‘집값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보기 시작하면, 커뮤니티 시설 이용 제한이나 동선 분리, 시설 배치 차별 같은 조치는 언제든 “합리적 관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다.
즉 차별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원칙처럼 제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임대세대 주민들은 같은 단지 안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당신은 완전히 같은 주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이러한 배제의 논리가 실제로는 허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통념은 반복적으로 소비돼 왔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훨씬 복합적이다.
예컨대 ‘행복주택’처럼 비교적 소규모 공공임대가 인근에 공급될 경우, 오히려 개발 기대감이나 기반시설 개선 효과로 주변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사례도 적지 않다. 2017년 5월 학술지 ‘주택연구’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반경 500m 이내 아파트 가격이 평균 7.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반대로 가격 하락 효과가 관측된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대규모 국민임대 단지처럼 특정 조건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현재 서울의 다수 소셜믹스 단지처럼 임대 비율이 10~30% 수준인 구조에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많은 분양세대가 ‘집값을 지키기 위해’ 임대세대를 밀어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검증되지 않은 불안과 편견을 근거로 공동체를 훼손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