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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 문제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일부 인정해 주기로 판단했다. 그러나 권리를 무한정 준 건 아니다. 태아의 생명권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Dr. 허지만의 진료실 이야기] 낙태법 개정이 묻는 철학적 질문 : 생명은 언제부터인가
태아의 생명권을 두고 고민하는 의사.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생명권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로, 가장 중요한 권리이자 '출생'의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이 완전히 가지게 되는 기본적 권리다. 임신 초기 몇 주까진 여성에게 충분한 숙려기간을 줬으니, 이후부턴 기존처럼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라는 의미이다. 여기까진 시대의 변화를 고려한 합리적 절충안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럼 언제부터인가?"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태아는 아직 태어난 건 아니다. 따라서 '태아는 인권이 있는가? 그렇다면 임신 몇 주부터 있는가?'에 대해 논쟁이 오랫동안 있었다.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니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선 '태어나서 생존할 확률이 있으면 생명권이 있다'라고 판단하는 것까진 대체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 시기는 의학이 발전하면서 계속 변한다. 

과거엔 만삭인 37주를 못 채우는 것만으로도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28주(7개월) 만에 태어난 아기의 생존율은 희박했고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많아 '칠삭둥이'라 불렸다. 

그러나 신생아중환자실과 집중 치료가 발전한 지금은 24주 신생아도 생존율이 50%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병원의 역량마다 다르지만, 의학적으로 태아 소생술 시도의 최소 기준 또한 24~25주쯤에서 형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가장 극단적인 신생아 생존 사례를 근거로 임신 22주를 '독자적 생존 가능성의 상한선'으로 제시했다. 22주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기간을 ‘결정가능기간’이라 정의하고 국민이 합의하여, 즉 국회가 개선 입법해 달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나 달라 합의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시작 지점부터 따라가 보자. 보수 진영과 함께 특히 종교계는 수정란부터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지금도 낙태를 무조건 반대한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낙태 전면 금지를 '헌법 불합치'로 판결한 상황에서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주장은 소모적인 고집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막무가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미 과학계에 비슷한 논쟁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 수정란에 대한 연구이다.

과학계엔 오래전부터 ‘14일 규칙’이 불문율처럼 내려왔다. 14일 규칙은 199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규칙으로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를 배양해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을 수정 후 14일까지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14일로 제한한 배경엔 윤리적인 이유만 있진 않았다. 

자궁 밖에서 수정란을 그때까지 키울 수도 없었던 당시의 기술적 한계도 있었다. 연구 기술이 발전하며 14일의 벽을 넘을 수 있게 되자, 과학계에서도 다시 생명 윤리의 상한선이 논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14일 규칙’을 산부인과에 가져오는 건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다. 우선 수정 후 14일은 ‘임신 2주’가 아니다. 그건 실험실의 계산법이고 이에 대응하는 진료실의 임신 주수는 ‘4주’이다. 임신 4주는 평균적으로 여성의 다음 생리 예상일에 해당한다. 임신을 예상하지 않았다면 임신 테스트기를 해볼 생각도 못 하는 시점이다. 따라서 임신 4주는 너무 짧다.

생명의 시작을 심장박동이 확인되는 시점으로 보고 이를 결정가능기간의 상한선으로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사망 선고를 할 때 심정지를 필수 요소로 본다면, 반대로 생명의 시작을 심박동의 확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대략 임신 6~7주 정도이다.

신경계가 발달하면 태아가 이론상 고통을 느낄지도 모르니 그 시점 이전까지를 기준으로 삼자는 의견도 있다. 뇌가 어느 정도까지 발달해야 고통을 느끼는지는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일단 태아의 뇌도 임신 6주부터 형성된다.

이와 별도로 진료실 현장에선 훨씬 더 다양한 상황을 만난다. 임신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 기형 등 중대한 문제가 발견되어 임신 중절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태아가 기형이 있어도 생존할 수 있다면 낙태법의 예외 사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엔 전부 불법이었던 상황이다. 

문제는 염색체 이상 등 태아의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는 시점이 보통 임신 12주 이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늦게 진단될 수도 있고, 첫 번째 진단을 받아들일 수 없어 큰 병원에 가서 재검사받을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상황이 결정되는 건 더 늦어질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부부가 결과를 받아들이고 대처를 고민할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그래서 ‘임신 12~14주’ 조차 결정가능기간의 상한선으로는 너무 촉박하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주로 나왔다.

여기까지 간략하게 훑어보기만 해도 기준을 정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2020년까지 입법을 요구했던 낙태법 개정은 결국 지금도 합의를 보지 못했다. 법을 미정으로 놔둘 순 없어서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현장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논쟁이 기묘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생명에 기준이 있긴 한 걸까? 인간만이 자연에 선을 긋는다.

글쓴이 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안산병원에서 산모입원 전담 임상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미래아이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따라가며 시기마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한다. 아울러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낀 생각과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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