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시장에서 바라보는 현대자동차의 기업가치가 이른바 ‘장기 박스권’을 뚫고 날아 올랐다.
현대차 주가는 종가 기준으로 최근 5년 동안 20만 원 안팎에서 횡보했다. 그러나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가 최초로 실물 시연된 뒤 올해 1월 말 이후에는 50만 원 위로 수직상승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이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를 활용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대자동차그룹
매년 수백만 대를 생산해 판매할 수 있는 완성차 제조 경쟁력이 지금까지 현대차그룹을 지탱해온 상황에서 로봇이 주는 기대감, 그리고 그 기대를 넘어서는 실제 성과물이 나타나면서 기업가치를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 로봇은 지배구조 개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이 가시화하면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막대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의 주요 의제로는 지배구조 개편이 꼽힌다. 국내 주요 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지닌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고 2018년에 이미 공식적으로 개편 시도도 있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활용해 정 회장이 자금을 대거 손에 쥐게 되면 지배구조 개편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 글로벌 3위 굳건, 눈높이도 점점 높인다
1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해외 판매 확대를 통해 글로벌 3위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현대차 415만8300대, 기아 335만 대를 합쳐 모두 750만 대 이상의 판매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판매량과 비교해 올해 목표를 세부적으로 보면 현대차와 기아 모두 국내와 달리 해외 실적을 높여 잡은 것이 특징이다. 올해 현대차는 345만8300대를, 기아는 277만5천 대를 해외 시장에서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지닌 위상은 정 회장 체제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정 회장이 취임한 2020년 4위에서 2022년 3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3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2위인 폭스바겐그룹과의 격차도 지난해 171만 대까지 지속해서 좁혀지고 있다.
특히 전기자동차(EV) 전환과 하이브리드차(HEV) 확대,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신설, 인도 푸네공장 인수 등 제품·생산 역량에서 우수한 평가도 받는다.
이는 실적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현대차·기아의 합산 매출은 2020년 163조 원에서 2025년 300조 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합산 영업이익은 2020년 4조5천억 원에서 2024년 27조 원까지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미국발 관세 파고에도 20조 원을 넘기며 기업가치를 떠받친 것으로 보인다.
◆ ‘진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현장에 실전 투입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달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가 옆돌기 후 공중제비를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로봇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학습한 지능을 현실 공간에서 스스로 적용했다는 점,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 영상이 연구용 아틀라스의 마지막 소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양산용 아틀라스로의 전환도 머지 않은 미래로 다가온 셈이다. 더이상 로봇이 시선을 끄는 제품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 활용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생산에 투입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로봇이 최근 현대차 주가를 끌어올린 재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아틀라스의 가장 최근 영상 공개 이후 “현대차그룹은 기계적 완성도, 시뮬레이션 및 트레이닝 역량, 상용화 전략, 양산 전략 측면에서 로보틱스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며 “현대차는 테슬라가 독점해온 자율주행 및 로보틱스의 미래 가치를 나눠 가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업”이라고 바라봤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8년 3만여 대를 시작으로 아틀라스 생산을 확대해가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완성차 및 증권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는 2029년 15만 대, 2035년에는 150만 대까지 생산이 늘어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점유율 16%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노조의 강한 반발에 따른 이른바 ‘노로(노조와 로봇) 갈등’은 로봇의 현장 투입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다만 생산 효율성 제고를 위한 로봇 대전환이 거스르기 어려운 흐름인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선도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의선 20조 쥐면, 지배구조 개편·지분승계 가시권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대차그룹의 제조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여줄 무기일 뿐만 아니라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완전한 지분 승계의 ‘열쇠’로도 떠오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은 정 회장이 대규모 자금확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아틀라스 실물 시연으로 몸값이 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 시기는 내년 초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최근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 직속으로 신설된 로보틱스·AI 전략 전담 태스크포스팀(TFT)에 투자전문가가 배치된 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개발을 이끌어온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나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CEO 직무대행을 맡은 점 등은 상장 전망에 무게를 더한다.
올해 상반기부터 주관사 선정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최소 10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21.9%를 들고 있는 정 회장은 구주매출을 통해 최소 20조 원을 손에 쥘 수 있는 수치다.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갖춘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지는 셈이다. 순환출자 구조는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낮고 연쇄 부도 위험이 높은 등의 뚜렷한 단점도 지닌다.
현대차그룹에는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3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 핵심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구조이고 2018년 당시 추진했던 것과 유사하게 현대모비스를 정점에 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 회장-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이 그룹 전체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계열사들이 나눠 들고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높여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30만3759주, 0.33%에 그친다. 기아(18.10%)와 현대제철(6.07%), 현대글로비스(0.72%)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주식은 모두 2871만886주로 10일 종가(42만3천 원) 기준으로 12조 원어치다.
또 정몽구 명예회장이 들고 있는 현대차(5.57%), 현대모비스(7.29%)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을 정 회장에게 넘길 때 발생하는 상속·증여세는 수조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가능성이 높아 지배구조 및 승계 추진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정 회장으로 실질 승계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승계와 맞물린 지배력 재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