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 한 말 쌓아 큰 산을 이룬다’, 곡물을 측정하는 단위인 ‘두’와 산을 의미하는 ‘산’이 합쳐진 두산이라는 이름의 의미다.
국내 기업사에서 가장 긴 130년 동안 한국 산업 발전과 함께했던 두산의 박승직 창업주와 박두병 초대회장이 지금까지 쌓아온 공을 인정받았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이 2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60주년 기념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양희동 한국경영학회 회장과 함께 헌액 기념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창업주와 초대회장의 창업정신, 도전정신을 이어받아 기업의 성장을 이루고 국가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두산은 2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박승직 창업주와 박두병 초대회장이 나란히 헌액됐다고 밝혔다.
한국경영학회는 2016년부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인을 선정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해 오고 있는데 부자 경영인이 동시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헌액식에 참석한 박두병 초대회장의 장손인 박정원 회장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자의 마음으로 걸어갔던 선대의 창업정신과 도전정신이 두산의 DNA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선대의 기업가정신을 이어받아 두산을 더 좋은 기업으로 만들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두산의 효시는 박승직 창업주가 1896년 종로에 문을 연 ‘박승직상점’이다. 올해 창업 130주년을 맞은 두산은 국내 기업사에서 공식기록을 보유한 최장수 기업이기도 하다.
박승직 창업주는 보부상으로 시작해 포목상, 무역업, 양조업, 운수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주식회사 전환과 무역업 확장 등을 통해 한국 근대 상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승직 창업주는 한인 상계의 리더로도 활약했다. 경성포목상조합, 직물상공제회 등의 상인 단체를 이끌며 상인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조선상업은행 설립과 광장주식회사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박두병 초대회장은 박승직상점을 계승해 근대적 기업 집단으로 전환시킨 기업가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46년 ‘박승직상점’ 회사이름을 ‘두산상회’로 바꾸고 광복 이후 혼란기 속에서도 제조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확립해 성장의 토대를 닦았다. 동양맥주를 필두로 식음료 산업을 육성하고 건설, 식품, 기계, 유리 등으로 사업을 넓혀갔다.
박두병 초대회장은 재임 기간 계열사를 모두 13개 설립 및 운영하며 그룹의 매출 규모를 349배 성장시켰다. 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아시아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두병 초대회장의 아시아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 선출은 한국 민간 경제인이 국제 경제단체 수장에 오른 첫 사례다.
한국경영학회는 “박승직 창업주는 한국 근대 기업사의 기틀을 마련한 기업가로 근대적 기업 조직과 책임경영의 기반을 형성해 이후 한국 기업 발전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며 “박두병 초대회장은 사업 다각화, 해외시장 개척 등으로 한국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기업 경쟁력을 높였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에서 국가경제 발전에도 구조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