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즈' 포스터,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루카스 돈트 감독과 '클로즈' 주연 에덴 담브린. ⓒ찬란, Pascal Le Segretain/Getty Images
두 번째 장편 영화 출품인 동시에 두 번째 칸영화제 수상이기도 하다. 2018년 첫 장편 <걸>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던 루카스 돈트 감독은 2022년 <클로즈>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전세계 시상식 48관왕, 62회 노미네이션 된 91년생 신진 감독의 이야기엔 어떤 특별함이 있길래 영화인들을 사로잡은 걸까?
영화 '클로즈' 스틸 이미지. ⓒ찬란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시절부터 함께했던 레오와 레미를 멀어지게 한 건 또래 친구들의 말 한마디였다. “너희 사귀니?” 둘의 성별이 같았던 만큼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질문. 레오는 “어릴 때부터 친구라 형제 같다”며 해명해 보지만 동급생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는다. “호모” “계집애 같다”는 말로 두 소년의 우정을 폄하하는 짓궂은 학생도 있다. 질문한 아이들도, 받는 아이들도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중학교 신입생이다. 듣는 입장에선 또래 친구들의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영화 초반부 두 사람에만 집중돼 있던 프레임은 중학교 입학 후 주변으로 확장하며, 오직 서로만이 가득했던 레오와 레미의 세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영화 '클로즈' 스틸 이미지. ⓒ찬란
관심을 가장한 폭력적인 말들에 레오의 감정은 크게 동요하며, 그 나이대 소년들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면을 보이기 위해 섬세함을 감추고 의도적으로 레미를 밀어낸다. 따뜻한 햇살 아래 베개 대신 자신의 등을 내어주던 소년은 곧 차가운 아이스링크에서 하키를 하며 거친 몸싸움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시선에 상대적으로 무던했던 레미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왜 그러냐 묻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피하기만 하는 레오에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내 감정도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의 서운함을 풀어주기에 레오는 그저 너무나도 미숙한 어린 소년이다.
영화 '클로즈' 스틸 이미지. ⓒ찬란
언젠가는 갈등을 풀고 예전의 사이로 돌아가길 기대했지만, 레미는 레오와 영영 멀어지는 선택을 한다. 레미의 선택이지만 레오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은 레오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레미의 부모님과도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가 하면, “(레미는) 레오와 친했다”는 동급생에 네가 뭘 아냐는 식으로 시비를 걸며 상실의 아픔을 외면한다. 이윽고 친형이나 다른 친구를 통해 레미의 빈자리를 대체하려 노력하기도 하지만, 사회가 강요한 남성성을 표방하기 시작하며 자신을 잃고 마음을 ‘닫은(closed)’ 레오가 ‘가까운(close)’ 친구와의 이별을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영화 '클로즈' 스틸 이미지. ⓒ찬란
그런데, 레오와 레미의 우정이 과연 주변의 편견처럼 성애적인 사랑이었을까? 사회의 경직된 시선이 두 소년의 다정함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둘의 감정이 우정이 아닌 사랑이라 단정짓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최은영 작가는 책 <쇼코의 미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오와 레미의 관계는 후자의 그것이 아니었을까 생각 드는 시점, 돈트 감독은 지난 2월 오스카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입되는 지배력, 독립심, 경쟁 등의 남성적인 문화가 소년들 간 아름다운 우정을 죽인다”고 언급했다. 결국 소년들의 우정을 파괴한 건 성별간 요구되는 역할을 이분법적으로 나눈, 편견으로 점철되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였다.
영화 '클로즈' 스틸 이미지. ⓒ찬란
영화 '클로즈' 스틸 이미지. ⓒ찬란
<클로즈>는 돈트 감독의 반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제작에 앞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과 함께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놀림의 대상이 되고, 때문에 다른 소년과 가깝게 지내는 것마저 두려워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클로즈>의 시작은 우정과 친밀함, 두려움, 남성성에 대한 루카스 돈트 감독의 고뇌와 질문에서 비롯됐던 것.
그리고 감독은 영화를 통해 비슷한 유년 시절 비슷한 경험을 겪은 관객들의 상처를 치유하길 바란다. 아무리 짓밟히고 짓눌려도 싹은 다시 자라고 꽃은 핀다. 영화의 중반, 레미를 떠나보낸 후 열린 테라피 과정에서 한 학생은 “강하다는 건 울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영영 빛을 잃은 듯 보였던 레오도 어느 순간 마침내 감정을 폭발시키며 한층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영화 '클로즈' 포스터. ⓒ찬란
영화 속 가을, 겨울을 거치며 무참히 잘려나갔던 꽃밭의 꽃들은 그런 레오를 대변하는 듯하다. 화사했던 꽃밭은 추운 계절을 지나고 어둡게 물들지만 곧 다시 다채로워질 것을 약속한다. 삶 또한 때로는 화사하고, 때로는 어둡고 추운 날들이 반복하며 계속되리라. 자신이 만들어낸 균열로부터 시작한 비극을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한 레오.
영화의 말미, 스크린 너머 관객들을 응시하는 소년의 눈빛에 어떤 다짐이 담겼는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겠지만, 예전처럼 주변의 편견어린 시선에 쉽게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클로즈>를 퀴어 장르로 한정 짓는 대신, 성장 영화로 범주를 넓히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