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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Getty

1년에 개방하는 기간은 딱 5일.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 거문오름 비밀의 숲 ‘용암길’이 열렸다.

28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거문오름 용암길 들머리에 다가서자 울창한 수풀이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있었다. 숲 사이로 난 용암길에 들어섰다. 화산섬 제주가 만들어지면서 분출한 용암이 빚어낸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 용암길에 있었다.

탐방객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어서 일정 간격으로 있는 리본이 없으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리본을 따라 거친 바위와 울퉁불퉁 굴곡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가 들리더니 동박새와 박새가 탐방객을 발견했는지 갑자기 울어댔다.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Getty

산딸나무, 예덕나무, 서어나무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목에는 칡넝쿨이 붙어 공존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곤줄박이와 긴꼬리딱새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지난 겨우내 떨어진 이파리들은 낙엽이 돼 바닥길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거친 바위를 뒤덮은 이끼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자 바람이 ‘우우우우~’ 한바탕 소리를 내며 푸른 상록활엽수림 지대를 훑고 지나갔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의 말을 들어보면, 거문오름은 해발 350~456m에 있는 오름으로 30만~1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막대한 양의 용암이 흐르면서 선흘곶이라는 곶자왈과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을 만들며 바닷가까지 흘러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형성했다. 생태학적·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난 거문오름은 2005년 1월 천연기념물(444호)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 6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지구로 등재됐다.

용암길도 제주의 곶자왈이다. 곶자왈에는 제주의 자연은 물론 역사와 생활도 담겨 있다. 거문오름이 가치를 인정받기 전에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주민들이 벌채와 개간을 하거나 숯을 굽기도 했다. 4·3 때는 주민들의 피신처 역할을 했다.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Getty

울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거문오름을 찾은 김동일(46)씨는 “2~3차례 용암길이 열릴 때마다 찾았다. 육지에는 이런 숲이 없는데 이곳에 올 때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이런 자연을 어디서 볼 수 있느냐”며 “육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경관”이라며 아이들과 걸음을 옮겼다.

바람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길가에 ‘경비초소’로 사용했음 직한 돌담으로 쌓인 4·3 흔적이 나타났다. 1평 정도 되는 크기의 공간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랐고, 이끼 낀 돌담은 4·3의 역사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용담길 5’에는 숯가마터가 잘 보존돼 있었다. 이끼로 뒤덮인 숯가마터는 선흘리 주민들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60년대까지 숯을 굽던 가마터다. 4·3으로 모든 것을 잃은 선흘리 주민들은 곶자왈 깊은 곳에서 숯을 구워 밤새 걸어 해안마을로 팔러 가거나 곡식과 바꿔 생계를 이었다.

좁은 길 사이에 하얗게 가시 돋은 흰가시광대버섯이 보였다. 해설사는 “아름답지만 먹으면 큰일 나는 독성이 있다. 달팽이들은 이 버섯을 먹는다”고 했다.

갑자기 숲의 공기가 시원해졌다. 밖은 뜨거웠지만, ‘용암길6’에서 만난 숲은 1시간만 있으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시원했다. ‘풍혈’이다. 이곳에 배치된 해설사는 “지하 암반 밑에서 빈틈을 통해 공기가 돌다가 올라오는 것”이라며 “기온이 15~18도 정도 돼 에어컨을 켠 것보다 시원하다”고 말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탐방객들도 풍혈지대에 들어서자 환호성을 지르며 양팔을 벌려 심호흡했다.

용암길은 한낮인데도 어둠이 내린 것처럼 수풀이 하늘을 가렸다. 6㎞에 이르는 용암길은 ‘용암길 14’ 팻말을 지나 선흘리로 이어졌다. 안웅산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연구사는 “만장굴처럼 생태계 보존을 위해 일부 구역에 대해서만 탐방이 가능하도록 공개하고, 나머지 지역은 인위적인 답사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28일부터 8월1일까지 닷새 동안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국제트레킹위원회 주관으로 국제트레킹을 열고 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019년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행사다. 거문오름 분화구 내부와 정상 능선을 따라가는 탐방코스인 태극길(10㎞)은 이번 행사 기간 예약없이 무료로 탐방이 가능하다. 평소에는 예약을 해야 탐방할 수 있다. 태극길은 정상(1.8㎞·1시간) 또는 분화구(5.5㎞·2시간30분), 능선(5㎞·2시간) 코스로 나뉘어 있다.

탐방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이며, 입장 마감은 오후 1시다. 탐방하려면 탐방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트레킹 기간에는 탐방객을 위한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용암길이 끝나는 선흘리에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까지 평일 30분, 주말 20분 간격으로 순환버스가 다닌다.

 

한겨레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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