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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의 달인, 일본국 아베 총리
ⓒgettyimageskorea

학교에서 주관식 수학 문제를 풀 때, 풀이 과정은 맞았는데 답이 틀린 경우 선생님들은 대체로 정답에 버금가는 후한 점수를 준다. 비록 마지막에 실수로 답은 틀리게 적었을지언정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풀이 과정은 틀리고 답만 맞게 쓴' 반대의 경우엔 거의 영점에 가까운 가혹한 점수를 준다. 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내놓은 패전 70주년 '아베 담화'가 풀이 과정은 틀리고 답만 꿰어맞춘 전형적인 사례다.

아베 총리는 패전 50주년, 60주년에 나온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보다 3배 이상의 긴 분량을 사용하면서도 메시지의 강도는 현저하게 약화시켰다. 담화의 4대 열쇳말로 발표 전부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침략, 식민 지배, 반성, 사죄'는 담화문 구석구석에 배치했으나, 맥락은 이전 담화와 전혀 딴판이었다. 무라야마, 고이즈미 담화는 일본이 주변국에 행한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해 반성, 사죄한다고 주체와 객체를 명확하게 표현했지만, 아베 담화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주체도 객체도 불분명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3배 이상의 양으로 이전 담화의 메시지를 30배 이상 물타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 담화는 침략에 대해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절대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일본이 외국을 침략한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권이 존중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원칙론도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고무시켰다"는 부분과 연결해 읽으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는 동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러일전쟁 운운하는 대목은 그 전쟁의 결과로 식민 통치의 가혹한 고통을 겪었던 한국 사람에겐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전쟁과 아무 관계가 없는 우리의 아이나 손자, 그리고 그 후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라는 숙명을 계속 짊어지도록 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중국의 <신화통신>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자신들이 당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피폭 참상은 영원히 기억하자고 하면서 그들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인한 고통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해 당사국에 울림이 있는 말이라도 하면서 그러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베 총리는 한-일 간의 최대 갈등 요인이 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의식해, 담화 앞뒤에 전쟁 중에 "명예와 존엄에 깊은 손상을 입은 여성들"의 존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점을 두 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내용에는 훨씬 못 미치는 내용이다. 하기야 아베 정부는 지난해 4월에도 고노 담화를 검증한답시고 담화 내용의 근간을 마구 훼손해 놓고도 천연덕스럽게 담화는 계속 계승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니, 기대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다.

이러면서 아베 총리는 "우리나라는 앞선 대전을 일으킨 것에 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습니다. ...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변함없습니다"라고 자신이 직접 반성, 사죄하는 것은 극력 피했다.

전체적으로 맥락이 맞지 않는 언술과 궤변적인 논리로 일관한 이런 담화에 미국의 백악관은 "총리가 이전 역사 관련 담화를 계승한다는 약속을 환영한다"는 성명으로 화답했다. 풀이가 틀렸는데도 정답은 맞았다는 이유로 미국이 아베 총리에게 100점을 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베 총리는 정답 맞히기만 중시하는 미국의 의도를 미리 간파하고 교묘한 짜깁기 표현에만 골몰한 듯하다. 하지만 아베 담화가 얼마나 불충분하고 궤변적인 논리로 쓰였는가는 세계 각지의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아베 총리에게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 이전에 논리 공부를 더 하시라고 부탁해야 마땅하다. 풀이가 정확해야 정답이지 풀이가 틀리면 설사 답이 맞아도 오답이라는 걸 알려주는 게 시급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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