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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은 지킵시다
ⓒgettyimagesbank

난 어릴 적에 정말 많이도 싸우고 다녔던 것 같다.

잘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금 핑계를 대자면 그 또래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불의에 맞서서 이 한 몸 내던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먹서열을 가리거나 별것 아닌 경쟁의식을 동반한 패싸움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유치한 싸움들 속에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다.

안경은 벗고 싸우기, 주먹으로는 때리되 발로는 차지 않기, 쓰러져 있으면 때리지 않기, 패싸움이라도 두 명이 한 명은 때리지 않기, 뒤에서는 공격하지 않기 코피가 나면 끝내기 뭐 이런 것들이다.

특별히 약속한 적도 없고 교칙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룰을 지켰던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 말이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룰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유치하긴 했지만 나름의 선을 정해놓는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특한 면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도 생각하는 이런 역지사지의 마음을 다 큰 어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직도 장애관련 시설을 혐오시설로 규정하고 내 집 앞은 절대 안 된다는 시위를 당당하게 띠를 매고 주도하는 어르신들의 걱정은 오로지 집값 몇 푼 더 올리는 것에만 갇혀있는 것 같다.

성소수자들의 작은 축제자리에 알바비까지 받고 동원된 몇몇 단체들은 각자 믿는 신까지 팔아가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다.

이방인도 극악한 죄인도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했던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만 몰래 다가와서 성소수자들은 빼고라고 이야기라도 해주었나보다.

며칠 전 어린 나이에 결혼생활을 정리한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벌써 정리가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외에는 친척들에게도 오래된 직장동료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구를 힘들게 했던 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던 것이다.

누가봐도 명백한 피해자라는 그 친구의 사연은 둘째 치고서라도 결혼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한 것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볼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다보면 장애를 얻을 수도 있고 원치 않는 가정의 불화를 겪을 수도 있고 성적 지향의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때로는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작은 죄를 지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럴 수도 있다.

겪어보지 않은 일, 경험하지 못한 위치에 대해서는 완벽히 알 수도 없고 멋대로 판단해서도 안된다.

어린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발길질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게 얼마나 아픈지를 알기 때문이다.

주먹은 주먹으로 돌아오고 발길질은 발길질로 돌아온다.

총을 든 사람은 총을 든 사람과 싸우는 것처럼 말이다.

내 마음대로 규정 짓고 단죄하는 어느 소수자의 고통과 아픔은 그 크기만큼 나와 내 가족을 찔러 올지도 모른다.

수많은 생각들과 가치들 속에서 나와 다른 모습과 상황들을 각자의 가치로 비판할 수도 있고 모르는 상황들을 나름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의 생각도 언제나 맞을 수는 없고 누구나 같은 위치에 늘 있을 수는 없으니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자.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룰을 넘지는 말자.

언젠가는 내가 많이 아플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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