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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의 윤전기
ⓒhuffpost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를 봤다. 1971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를 신문이 폭로하면서 시작되는 얘기다. 언론자유와 권력의 탄압이라는 주제 말고도 눈여겨볼 곁가지가 많았다. 정의파 편집국장보다 장사와 언론자유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장에 주목한 부분도 신선했고, 죽자 살자 경쟁하는 신문끼리 언론자유라는 가치 앞에 연대하는 감동적인 요소를 유머러스하게 툭 치고 넘어가는 것도 좋았다. 언론인과 정치인의 관계를 짚는 대목도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윤전기와 식자공이 등장할 때다.

윤전기는 신문사를 다룬 영화마다 나온다. 고생과 외압을 이기고 기사가 송고된다. 윤전기가 돌아간다. 인쇄된 신문이 긴 벨트를 타고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올 때, 그 뒤에 어떻게 될지 안 보여줘도 우리는 안다. 저 한장 한장이 곳곳의 각양각색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할 거고, 그러면 그들이 나서서 옳은 말, 옳은 일을 할 거고, 그러면 억울한 사람들이 풀려나고 나쁜 놈들이 쫓겨날 거란 걸. 이 영화도 그런 관습을 차용하는데 묘사가 유독 길고 자세하다. 단어들이 식자로 묶여 인쇄 원판을 구성하는 과정, 그 작업을 하는 식자공의 손, 마침내 신문이 햇빛 아래로 나오는 모습. 이걸 영화의 절정부뿐 아니라 뒷부분에서 다시 또 길게 비춘다. 

'더 포스트'의 윤전기
ⓒ영화 '더 포스트' 스틸 이미지
'더 포스트'의 윤전기
ⓒ영화 '더 포스트' 스틸 이미지

종이신문이 사라진다는 말이 수십년 전에 나왔다. 실제로 2016년 영국의 <인디펜던트>, 캐나다의 <라프레스>가 온라인뉴스만 남기고 종이신문을 폐간했고, 수년 전에 한 미디어컨설팅 업체가 한국에서 종이신문이 2026년에 사라진다고 예언했다. 하지만 다른 소리도 나온다. 여론조사에서 종이신문으로 읽은 기사가 모니터로 본 것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응답한 이가 67%였네, 아직도 전세계 27억명이 종이신문을 보네, 인도와 중국은 종이신문 부수가 늘고 있네….

종이신문이 사라지면, 기자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때 클라이맥스 장면, 송고된 기사가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를 어떻게 화면에 담을까. <인디펜던트>는 마지막 종이신문 사설에서 ‘윤전기가 멈추고 잉크는 마르고 더 이상 종이 접히는 소리도 나지 않겠지만, 한 챕터가 끝나면 다른 챕터가 시작되듯 <인디펜던트>의 정신은 계속 이어질 거다’라고 썼다. 맞다. 중요한 게 사라지면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영화도 그럴 거다. 컴퓨터그래픽을 쓰든 어떤 기법을 써서라도 진실이 한 기자의 손에서 온 세상으로 퍼질 때의 감흥을 담아낼 거다.

그래도 종이신문은 쉽게 놓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추상적인 정보가 아니라 만져지는 구체적인 물건으로서의 정보, 단순 정보가 아니라 그걸 분리하고 요리해서 밥, 반찬, 국 등으로 나눠 담아주는 정보의 도시락. 그걸 놓기 싫어하는 게 지나간 시대에 매달리는 향수만은 아닐 거다. 디지털 정보가 놓치기 쉽거나 실제로 놓치고 있는 것들, 의심과 숙고, 배려와 논의 같은 것들까지 사라지면 안 된다는, 그러지 않도록 뭔가를 하자는 적극적인 태도일 수도 있다.

윤전기를 비추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종이신문과 윤전기야말로 사라져가는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유품이 아닐까. 내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 생각을 했나. 스필버그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 유품이 사라지도록 놔두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 장면에 담은 것 아닐까.

각설하고,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2026년에도 한국에서 종이신문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에 내기 걸 사람? 나?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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