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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우린 처음부터 잘못 사회화된 게 아닐까?
ⓒhuffpost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나는 남성 집단에서 오래 살았다. 남자 중학교와 남자 고등학교를 다녔고, 군대도 갔다 왔다. 소위 남성 집단의 생리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그 세계를 복기해볼수록, 실은 나도 다를 거 하나도 없고, 그냥 전부 잘못 사회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나 성은 대개 또래집단으로부터 처음 듣고 배운다. 따지고 보면 다들 뭘 알지도 못하는 고만고만한 이들의 조언을 공유하고, 또 그것을 내면화하며 자라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내면화할까? 데이비드 웡이라는 사람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떤 관계에서든, 남성은 포식자(predators)이고, 여성은 먹잇감이다. 그들의 두려움과 거부의 표현들(방어적인 신체적 공격을 포함하여)은 내숭떨기 게임이고 마치 브라자에 붙은 교묘한 걸쇠처럼 극복해야 할 무엇이다.”

극복해야하는(풀어내야) 하는 브라자 걸쇠처럼 여긴다니. 기분나쁜 표현이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간의 수많은 ‘남자들끼리 이야기’를 반추해봤을 때, 정말로 날카로운 비유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대부분 남자들도 파렴치한은 혐오한다. 보통 남성 사회에서도 성폭력 가해자는 매우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배제한다. 심지어 폭력(적인 무엇)에 비교적 관대하거나 남성성에 흠뻑 취해 힘의 우위에 우쭐해하는 마초들조차도 성폭력은 가장 수치스러운 행위라고 취급한다.

 

애초에 우린 처음부터 잘못 사회화된 게 아닐까?
ⓒColin Anderson via Getty Images

문제는 이 성폭력이라는 걸 예의 그 ‘강압 또는 물리력’을 동반하는 경우나 혹은 지하철 치한, 음흉한 아재, 악인의 침범 등 일종의 재해적 상황 정도로만 협소하게 규정한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성폭력을 혐오하는 자신은 결코 성폭력 같은 수치스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걸쇠의 퍼즐 풀기 과정’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선 아예 성폭력이라는 인지 자체가 없다.

보편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이렇다. (첫 연애를 포함해서) 연인 혹은 성적 긴장감이 존재하는 어떤 사이에서 스킨십 시도를 거부하거나/거부당한 경험이 누구나 한 번 이상 있을 것이다. 대부분 이를 일종의 ‘실패한 스킨십’ 정도로만 여기지, 성추행이라고 인지(또는 규정)하지 않는다. 만약 상대가 그저 소극적으로 거부한다거나, 무엇은 거부했더라도 또 어느 단위의 스킨십에는 동조한 정도만 되어도, 거부된 스킨십들은 그저 적당히 튕기는 거라고 여긴다.

연애와 성에 대한 경험치를 이런 식으로 쌓는다. 이렇게 쌓인 경험치라는 건 상호간의 합의와 만족에 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이라든가,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교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결국 ‘눈치’다. 눈치껏 분위기를 읽고, 눈치껏 타이밍을 재고, 눈치껏 시도해보고, 눈치껏 반응을 해석하고(사실은 제멋대로), 미니 당기니 하다가, 회유도 해보고, 떼도 써보고.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는 당연히 오해, 자의적 해석의 가능성이 내장되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사실은 문제의 근원이 여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 다 처음부터 잘못 사회화된 게 아닐까. 사실은 성추행인데 그걸 성폭력이라고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 상대가 거부감을 표했는데도, 그게 폭력이나 침범이 아니라 그저 타이밍이 어긋났거나 서툰 애정 표현 정도로 대충 정리하고 넘어가는 그 지독히 자기중심적이고 남근중심적인 관념.

폭로의 가해자들의 변명 중에 ‘연애감정’과 ‘합의된 관계’의 대목에서 섬찟함을 느꼈다. 공감능력 떨어지는 가해자를 악마화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성폭력이라는 것들이 다 저런 자기중심적인 기준과 해석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으니까, 따라왔으니까, 내가 협박하지 않았으니까,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_ 못이기는 척 내심 동의하는 거라고, 따라서 합의된 관계라고 제멋대로 여긴다는 것.

그리고 이건 악마들의 이기심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내면화해온 관념이다. 즉, 섬찟함은 가해자들에게서 느낀 게 아니라 나도 다를 거 없겠다는 생각에서 느낀 것이다. 누구나 강압과 물리력을 동원하는 파렴치한 성폭력을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기지만 이 왜곡된 성 관념은 성폭력을 스스로 성폭력 아닌 무엇으로 합리화하게 하는 핑계를 제공하여 아무 죄의식 없이 성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권력이란 건 이 토대 위에서 그저 활용될 뿐이다.

한두 군데서 불량이 나오면 제품 결함일 수 있다. 근데 전방위적으로 문제가 터져 나오면 그냥 생산라인 자체가 문제인 거다. 불량품 몇 개 처리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 라인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불량이 터져나오는 라인이 돌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은 얼렁뚱땅 내면화해온 그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된 섹시즘이다. 권력은 그저 더 강한 연료일 뿐이다.

미투 보면서 나라고 저 라인 바깥에 서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해시태그는 차마 못 붙이겠더라. 그냥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 다 어쩌고 살았는지 뻔히 아니까. 당연히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근데 나로서는 일단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남자들끼리’에 이 이야기를 건네야 그 다음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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