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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한겨레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 에스엔에스상에서 다시 회자되면서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서는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는 것으로 유명하며 “100권의 시집을 펴낸” “삼십년 선배” “En선생”으로 등장하는 문단 원로가 “나”의 정장 상의를 구겨뜨리고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등의 장면이 묘사된다. 시의 마지막은 이러하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이 시가 지난 4일 트위터 ‘문단-내-성폭력 아카이브’에 오르자 6일 오후 현재까지 1500회 가까이 리트위트되고 페이스북 등 다른 에스엔에스 상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아카이브는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 적어도 처벌이나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최영미 시인님 고맙습니다”라며 문단 성폭력 고발 운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6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아마도 30여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은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였고, 술 먹고 격려도 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말했다.

최영미 시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제 시를 문학작품으로 봐주시기 바란다. 문단과 사회에 만연한 우상 숭배를 풍자한 시다. 지금은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트위터 ‘문단-내-성폭력 아카이브’ 계정과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에서는 또 다른 문인들의 성폭력에 관한 주장과 실명이 올라오면서 2016년 문단을 달구었던 문단 성폭력 고발 운동이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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