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는 성인이 아니었다

2016-03-16     Krithika Varagur
ⓒASSOCIATED PRESS

올해 9월 4일이면 테레사 수녀는 성인으로 추대된다. 놀랄 일은 아니다. 2003년에 '복자'로 추대되었는데, 그건 성인 추대로 가는 일방통행 도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니다. 테레사 수녀는 성인이 아니었다.

문제가 많았던 그녀의 활동을 덮어 버리는 결과가 된다. 강요에 의한 개종, 독재자들과의 미심쩍은 관계, 크게 잘못된 일 처리, 그리고 사실은 상당히 나빴던 의료 관리 등이 있었다. 가장 나쁜 것은, 테레사 수녀는 제 3세계에서 자선 활동을 펼쳤던 전형적 백인이라는 점이다. 테레사 수녀의 대중적 이미지는 여기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식민지 시기 이후의 인도와 재외 인도인들의 정서에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오타와 대학교의 2013년 연구는 테레사 수녀를 둘러싼 '이타주의와 너그러움의 신화'를 타파했으며, 신성시되는 테레사 수녀의 이미지는 사실 관계와 맞지 않으며, 약화되어 가는 가톨릭 측의 강력한 미디어 캠페인의 결과였다고 결론내렸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열정처럼 고통을 받는 것에는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있다. 세상은 그들의 고통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테레사 수녀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히친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답은 놀랍지 않다. 테레사 수녀가 활동했던 지역을 생각해 볼 때, 인종 차별적 식민주의다. 100개국을 방문했다고는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활동했고 인도가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를 낳았다. 그리고 인도에서 테레사 수녀는 역사가 비제이 프라카시가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을 그들의 유혹과 실패에서 구해주려 노력하는 식민지 백인 여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라 부른 것이 되었다.

테레사 수녀는 순교자였다. 인도와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순교자가 아닌, 백인 부르주아 죄책감의 순교자였다. (프라카시의 말처럼, '빈곤을 생산하고 유지시키는 힘에 대한 진정한 도전'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인도 정부 공무원이 작년에 말했다. 테레사 수녀와 다른 수녀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하려 한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러한 캠페인은 테레사 수녀가 살아있을 때 시작되었다. 낙태에 반대하는 영국 언론인 맬컴 머거리지는 테레사 수녀의 대중적 이미지를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로 삼고 1969년에 처음으로 칭찬 일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1971년에는 책을 냈다. 그는 테레사 수녀를 역사보다는 '신화의 영역'에 놓기 위한 대중의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사망 후 5년을 기다리는 관례를 무시하고 사망한 다음 해에 바로 복자 추대 절차를 시작했다.

이 중 새로 밝혀진 사실은 없다. 이 대부분이 테레사 수녀가 복자로 추대되었던 2003년에 보도되었고,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격렬한 비판, 터릭 알리의 다큐멘터리 '헬'스 앤젤'에서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고인을 욕보이는 일이 아니다.

노벨 상을 받은 '인도인' 5명 중 1명이 아픈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둔 여성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빈곤은 아름답지 않다. 끔찍하다. 테레사 수녀는 갈색 인간의 수호성인이 아닌, 갭 이어를 맞은 백인들의 수호성인이 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Mother Teresa Was No Sain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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